3분 읽기

고양이에게 와인향이 나요

[CULTURE] 프랑스 작가 상뻬와 고양이가 만나다

by Chloe2022.06.17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내면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유일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동물’이고, 나머지 하나는 ‘예술’이라고.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꽤 설득력있는 통찰이다. 굳이 동물을 기르거나, 예술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동물을 보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위안을 얻었던가.

하물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반려동물 전문 서점 책보냥에서 주문했던 샹뻬(Sempe)의 ‘고양이 친구를 위하여(Fur Katzenfreunde)’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받았다.

샹뻬의 작품 중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들만 모아 놓은 희귀 작품집.

설레는 마음으로 포블스와 함께 책 개봉을 시작해본다.

고양이 친구를 위하여 Fur Katzenfreunde

사무실로 도착한 상뻬의 고양이 일러스트 모음집, ‘고양이 친구를 위하여’.

오래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책은 생각보다 사이즈도 작고, 페이지 수도 적어 잠시 당황했지만, 설렘의 크기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조심스레 당기자 비닐 패킹이 부드럽게 벗겨지고, 뽀얀 속살을 드러냈다. 겨자색을 닮은 오묘한 색깔의 속지를 지나 독자의 호흡에 맞춰 편집한 그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뻬 특유의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40여 개의 수록 작품들은 하나도 빼 놓을 수 없이 소중한 느낌이었다.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혹은 신비롭게 그림 속을 거닐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아껴두고 싶을 정도로.

장자크 상뻬 Jean-Jacques Sempe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상뻬는 올해로 89세를 맞은 원로 삽화가이다.

악단 연주자를 꿈꾸던 소년 시절, 선망의 대상이던 재즈 뮤지션들을 그리기 사작하면서 직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1960년 ‘꼬마 니콜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 때부터 프랑스는 물론 세계에서 데생의 일인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상뻬는 1960년부터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파리 마치’, 미국 ‘뉴요커’ 등 유명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해 왔다.

1991년, 그가 30년간 데생과 수채화로 작업한 표지들을 모아 전시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 문화를 담아내 오랫동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게 아닐까.

보고, 듣고, 맛보는 그림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귀에선 음악 소리가 들리고, 코에서는 향기가 나며, 입에선 은은한 풍미가 감도는 기분이 든다.

어떤 그림은 경쾌한 스윙재즈에 갓 볶은 커피콩 향기가 묻어나고, 입안에선 폭신한 에그타르트 맛이 느껴지는가 하면, 또 다른 그림에서는 무거운 레퀴엠 선율에 무거운 담배 냄새와 싱글몰트 위스키가 떠오르기도 한다.

평면의 그림은 그 속에 품은 입체적인 이야기로 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털뭉치들도 깊이 잠든 금요일 밤, 아끼는 플레이리스트에 와인 한 잔 옆에 두고 상뻬의 작품 속에 빠져보는 경험은 분명 나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