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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PEOPLE] 고양이 작가 이용한 님을 만나다
by Bean2022.06.15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고양이가 있다.
전 직장에서 기르던 고양이 루비.
눈 한 쪽이 없어도 어찌나 예쁘던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임보하는 내내 스스로 하녀가 되길 자청하며 극진히 수발을 들었다.
루비는 내가 자길 좋아해준다는 걸 아는 듯, 출근하면 내 자리에 앉아 날 맞아주었다. 옅은 올리브 색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 길게 뻗은 하얀 다리까지 어제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부정적이거나 무색무취일 수도 있고, 나처럼 무한 긍정의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기억을 차곡차곡 쌓듯 고양이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가가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 이용한 작가.
지난해 12월 21일 출간한 여덟 번째 고양이 에세이 ‘어서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마약 같은 고양이 맛을 보여준 용한 님을 여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용한 님. 시인이기도 하고 고양이 작가이기도 한데요.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으세요?
시인, 고양이 작가 모두 좋습니다. 사실, 시(詩)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고양이 작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냐 그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책을 내서 고양이들 사료값은 충당하고 있으니 ‘고양이 작가’라고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럽겠네요.ㅎㅎ 누구는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더 명예스럽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Q. 등단한 시인이 어떻게 고양이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는 여행작가였어요. 여행을 다니다가 만난 고양이들한테 먹을 것도 주곤 했는데, 저한테 재롱을 부리는 거에요. 이때다 싶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때는 SNS가 아니라 블로그를 할 때였는데, 여행 사진을 포스팅했을 때보다 고양이 사진을 올렸을 때가 훨씬 조회수가 높았어요. 그때 ‘이 세계는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희한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재미삼아 시작한 고양이 사진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고,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그렇게 첫 번째 고양이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가 세상에 나오게 된 거죠.
Q. 용한 님의 책을 고양이들의 이름이 참 인상적이에요. 어쩜 사진 속 이미지와 찰떡인지. 작명 센스가 놀랍습니다.
고양이 이름은 보통 외모를 보고 바로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바로 ‘단발머리’가 그런 아이였죠. ‘땅콩 소년단’ 같은 경우에는 똑같은 동작으로 군무를 추는 순간적인 모습을 보고 지었어요. 반대로 한참 생각하는 애들도 있어요. 바로 ‘아토’랑 ‘아쿠’ 형제인데요. 고민 끝에 어미의 품종인 아비시나안의 ‘아’자를 돌림으로 지은 거예요.
Q. 고양이 작가인 동시에 열성적인 캣대디인걸로 아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꼭 챙겨야지’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남들은 제가 오래 전부터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작가를 하고, 캣대디도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Q. 정말요? 완전 의외인데요.
사실 제가 아니라 아내가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했어요. 어느 날 퇴근 중인 아내의 연락을 받고 집 앞에 나가보니 누군가 버려 놓은 소파에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젖을 먹이고 있었어요. 그날 따라 달빛이 밝아 그 모습이 연극 무대의 핀 조명을 받은 것처럼 아름다웠어요. 그 장면 하나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 같아요. 제 밑바닥에 아래 숨겨져 있는 측은지심을 건드린 게 아닌 가 싶어요. 그 후부터 아내보다 제가 더 고양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Q. 그럼 그 고양이들을 구조한 건가요?
아니요, 그 고양이들은 집 앞에 있는 콘크리트 박스에서 지냈어요. 보름 정도 지났을까… 새끼 고양이들이 꼬물꼬물 지나가더라고요. 그때 까지만 해도 고양이 사료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아예 고양이 세계에 무지했죠. 그래서 멸치 우린 물, 먹다 남은 삼겹살과 탕수육을 줬어요. 그땐 이런 걸 줘도 되는 지 몰랐으니까요. 심지어 맨밥까지 줬다니까요.ㅋㅋ
Q. 요즘에 길에서 ‘냥줍’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캣대디로서 조언을 한다면요.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아깽이가 울고 있으면 무조건 어미를 잃은 아이이거나 유기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소(離巢)* 중인 경우가 많아요. 보통 이소하는데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상 걸린다고 해요. 어미가 한 새끼를 물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옮겨 놓으면 새끼 고양이가 불안해서 울어요. 어미는 새끼를 달래고 다시 울고 있는 다른 새끼를 이소하는 과정을 반복하죠.
길에서 아깽이가 울고 있을 때 하루 정도 지켜보라고 하는 이유는 그거예요. 이소 중이거나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갈 때도 있으니까요.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다고 데려가버리면 그건 유괴가 돼 버리는 거예요. 데리고 간 아기고양이를 잘 키우면 상관이 없는데, 그 아이들을 보호소에 보내 버리면 아시겠지만15일간 입양공고 후 안락사해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하루 이틀 지켜본 후 구조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이소 離巢 :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보금자리를 이사 하는 일.
Q. 외국에서도 고양이 촬영을 많이 한 걸로 압니다. 고양이에 대한 문화도 다양할 것 같아요.
모로코와 터키는 고양이들의 천국이에요. 특히 모로코는 터키보다 가난한 나라입니다. 고양이 사료를 살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그럼에도 자기가 먹는 음식을 작은 것이라도 고양이와 함께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고양이한테 비싼 사료를 주는 것 보다 자기가 먹을 빵을 나눠주는 모르크가 진짜 고양이 천국이 아닌가 싶어요.
Q. 일본 고양이 섬도 인상적이었을 것 같아요.
일본의 여러 고양이 섬 중 '사나기지마'가 기억에 남아요. 여긴 플라잉 캣(Flying Cat)의 성지입니다. 세계 각국의 고양이 사진작가들이 나르는 고양이를 찍기 위해 이 섬으로 모이죠. 여긴 방파제 간격이 2미터 정도라 고양이가 안심하고 점프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고양이 개체수도 많지 않아 관리도 잘 되고 있고요. 괜히 일본 작가들이 거길 가서 찍는 게 아니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촬영하는 용한 님만의 꿀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고양이는 밥을 먹고 나서는 ‘우다다’라고 하죠, 활발하게 뛰어 놀고 점프도 하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순간을 노리면 기상천외한 동작의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물론 어린 고양이만 가능하지만요. 그리고 밥 주기 전에는 밥을 어서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행동을 많이 해요. 배 보이고 발라당 눕는다거나 하는 행동들이요. 이때도 카메라 렌즈 앞에 포즈를 취해주는 좋은 순간입니다. 우연을 예상하고 준비하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