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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사랑한 털뭉치들

[Culture] 예술가의 반려동물 뮤즈를 소개하다

by Bean2022.05.31

주말에 전시회를 다녀오다 진이 다 빠져 집에서 곯아떨어진 적이 있다. 한 예술가의 생각과 철학을 담기엔 다소 좁은 전시장에서 작품들은 저마다의 오라(Aura)를 뽐내고 있었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어떤 생각과 심정으로 펜을 쥐었을지… 예술과 다소 거리가 먼 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티스트들은 분명 범인(凡人)들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 보고,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1인치의 숨은 무언가를 발견하여 그만의 필터를 통해 세상과 다양한 오브제로 소통하는 사람들일 게다.

그 오브제는 그림, 혹은 사진이나 글이 될 수도 있을 터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유영하고 있는 예술가의 삶에 풍덩 뛰어든 반려동물은 과연 어떤 녀석들일까?

예술가의 뮤즈이자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털뭉치 친구들에 대해 알아보자

차우차우를 사랑한 미국 모더니즘 선구자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1887-1986


미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스무 살이나 많은 사진가 ‘스티글리츠’를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결혼 후 남편의 외도 문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오키프는 이혼 후 지옥 같은 상황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광활한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작업에만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다. 당시 꽃과 식물의 기관, 조개껍데기 등 자연을 내면화한, 추상과 구상이 혼재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오키프는 꽃만큼이나 동물을 사랑했다. 뉴멕시코로 이사한 뒤 부쩍 외로워 보이는 그를 위해 친구가 사자를 닮은 검은 차우차우 '보(Bo)'와 '치아(Chia)'를 선물했고, 두 검은 털뭉치는 순식간에 허다한 오키프 마음의 최애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추위에 약한 보와 치아를 위해 난로의 앞자리를 늘 비워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생전 “가족을 지켜주는 그들의 사나운 성격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충성심이 강한 차우차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천재가 사랑한 '바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자신의 입으로 천재라고 말하고 다닌 살바도르 달리는 편집증과 강박증으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녹아 내리는 시계 그림으로 유명한 '기억의 지속'은 달리가 두통에 시달려 친구와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하고 집에 혼자 남아 우연히 그린 그림이다. 풍경화에 넣을 오브제가 생각나지 않아 불을 끄고 작업실을 나가려는 순간 두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보였다는 뒷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살바도르 달리의 반려묘로 잘 알려진 ‘바부(Babou)’는 일반 고양이라기 보다 고양이과 소형 맹수가 더 어울리는 오셀롯(Ocelot) 종이었다. 누가 봐도 달리다운 반려동물이었다.

달리는 "이 동물은 살아있는 옵아트(Optical art)!"라고 그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며, 거의 모든 공식석상에 동행할 만큼 애정을 과시했다.

한 번은 그의 커다란 짐승을 뉴욕 맨해튼 한복판 식당에 데려가 테이블에 묶어 두고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대한 바부를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페인트로 아트 디자인을 입힌 고양이"라고 둘러댄 적도 있었다고.

아무튼 길게 뻗쳐 있는 수염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달리와 거대 고양이 바부는 묘하게 잘 어울리는 커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개 사랑도 남달랐던 현대미술 거장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짧은 다리에 긴 허리를 갖고 있는 닥스훈트의 엉거주춤 걷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먼저 튀어나온다. 피카소가 그린 드로잉만해도 닥스훈트 ‘럼프(Lump)’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다.

피카소는 아프간하운드를 비롯하여 닥스훈트, 복서, 푸들 등 많은 품종의 개를 키운 애견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일생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림’ ‘여자’ 그리고 ‘개’일 정도로 말이다.

피카소는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그의 일생 최애 반려견 럼프의 원래 주인은 사진가 '데이빗 더그 던컨(David Douglas Duncan)’이었다. 던컨과 함께 집에 놀러 온 생후 1년 남짓한 닥스훈트를 본 피카소는 "이따 갈 때 럼프는 두고 갈거지?"라고 말할 정도로 첫눈에 빠져버렸다.

얼떨결에 반려견을 빼앗긴 던컨은 훗날 "피카소는 늘 많은 개와 함께였지만, 그의 팔에 안긴 건 럼프가 유일했다"고 그들의 사랑(?)을 회고했다.

피카소도 럼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주 "럼프는 개가 아니야, 그렇다고 작은 사람도 아니지. 그는 무언가 격이 다른.. 그런 존재거든"이라고 말하곤 했다.

럼프는 1973년 17살의 나이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피카소는 럼프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일 후인 1973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럼프를 따라갔다.

꽃사슴에 흠뻑 빠진 멕시코 대표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스물 한 살에 첫눈에 반한 남편 디에고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스물 살 이상 연상이었던 디에고의 심한 여성 편력으로 인해 프리다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를 위로한 건 그림이었다. 특히 트레이드 마크인 일자 눈썹이 고스란히 담긴 자화상을 즐겨 그렸다. “내가 날 제일 잘 안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림과 더불어 프리다 칼로의 외로움을 달랜건 정원은 작은 동물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그녀는 정원에 거미원숭이, 고양이, 개, 앵무새, 물수리, 사슴, 칠면조 등 온갖 동물들을 길렀다.

선천적 자궁기형과 교통사고로 인한 골반 장애로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던 그에게 동물은 가족,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집에서 키우던 애교가 많은 작은 꽃사슴 '그라니소(Granizo)'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라니소가 자라면서 뿔이 생겼지만, 그녀가 침대 곁에 두고 안아주는 데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라니소는 불치병을 앓는 자신을 화살에 맞은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 '상처 입은 사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현대 소설의 대가를 사로잡은 다지증 고양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쓴 세계적인 소설가 헤밍웨이는 한 마디로 고양이 덕후였다. 그가 작업 중일 때 타자기 위에 올라올 수 있는 유일인 지구 생명체가 바로 고양이일 정도였다.

그런 헤밍웨이는 한 선장에게 다지증 고양이를 선물 받은 후 다지증 고양이 마니아가 되었다.

당시 뱃사람들에게 다지증 고양이는 행운의 부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발가락이 다른 고양이보다 많기 때문에 바다의 강한 파도에도 균형 잡는 것이 능할뿐더러 쥐를 잡는 능력도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스노우볼(Snowball)’도 다지증 고양이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집사들이 그렇듯 헤밍웨이 또한 고양이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을 개조했다고 하니,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생전 고양이에 대해 이런 말도 말했다.

"고양이는 절대적으로 감정에 솔직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고양이는 그러지 않는다"고.

집사들이라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현재 헤밍웨이의 생가에는 스노우볼의 60마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