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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따뜻한 이별의 기록

[CULTURE] 만화 ‘개를 기르다’을 추천하다

by Chloe2022.05.25

1800년대 후반 전 유럽을 휩쓴 ‘자포니즘(Japonism)’* 열풍 이후 일본은 1970~1990년대에 걸쳐 한 번 더 세계 대중문화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르네상스는 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그야말로 문예 부흥기였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망가(만화)는 미국, 프랑스 등 일부 튼튼한 내수 만화 시장을 구축한 나라를 제외하곤, 대부분 나라의 콘텐츠를 고사시킬 만큼 수준 높았다. 특히 변태스럽고 괴기스런 병맛 코드부터 한 분야의 심원에 근접한 전문 장르물까지 아우르는 다양성은 당시 일본 망가 산업을 떠 받치는 근원이었다.

극사실주의 또한 성인을 위한 망가의 한 장르였고,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다니구치 지로였다. 그는 웃음기 쪽 뺀 사실적인 묘사와 드라이한 이야기 전개로 독창적인 나만의 시장을 만들어 냈다.
2017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일생의 화두는 음식, 등산, 그리고 동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1992년 작 ‘개를 기르다’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울림은 여전하다.


*자포니즘 Japonism
19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담담한 죽음의 기록

‘개를 기르다’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 남서부 돗토리현 태생인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결혼 후 나만의 개를 기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교외에 마당이 있는 집에 신혼 집을 장만하고, 시바와 테리어의 혼종 강아지 ‘탐’을 입양했다.

이야기는 탐이 14살 되던 해부터 시작된다.

탐은 이미 나이들고 병약한 노견이다. 죽음에 근접해가는 탐의 병상 기록과 젊고 건장한 시절 탐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죽어가는 개를 돌보는 주인의 속마음이 이질감없이 교차한다.

주인공의 절제된 나레이션이 오히려 감정선을 주체할 수 없이 흔들어 놓는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깊은 신음 같은 걸 내뱉지 않을 수 없다. 애절하고 경건한 한 동물의 일생 앞에.

생은 다시 반복된다

사랑하던 탐을 보낸 후 마음을 닫은 부부. 1년이 넘었지만, 마당 한 켠에는 아직 탐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보내던 그들의 공간에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들어온다.

내키지 않았지만 우연히 시작된 고양이와의 동거는 부부에게 개와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서먹하던 부부와 고양이는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된다. 생은 그렇게 반복된다는 듯이…

‘개를 기르다’는 만화라기보다는 어른을 위한 에세이에 가깝다. 화풍은 요즘 웹툰에 익숙한 이들에겐 구닥다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시절 투박하지만 따뜻한 츤데레 반려 감성과 펜으로 직접 그려낸 아날로그 작화 양식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개를 기르다’를 계속 현실로 소환하는 이유다.


*개를 기르다 (1992, 犬を飼う)
저자 : 다니구치 지로
출판 : 청년사 (2005년)
판매 : 절판 (도서관 대여, 중고서점 구매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