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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어, 이 바다 향기

[PEOPLE] 동해형씨 대표 김은률 님을 만나다

by Eugene2022.05.25

독립이란 어쩌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자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개척하며 멀어진 거리만큼 삶은 탄성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나이가 들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가 다시 유연한 ‘나’로 되돌아 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동해형씨 대표인 김은률 님은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디자인으로 세상과 마주했으며, 마케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만의 거리와 탄성을 만들었다.

그 탄성은 3년 전 그를 다시 고성으로 잡아당겼다. 늘 친근했던 고향의 수산물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부산물이 아닌 원물 그대로 진정성을 담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덕분에 속도는 느렸지만, ‘동해형씨’를 낯설지만 끌리는 브랜드로 보란 듯 만들어 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차를 달려 도착한 고성의 작은 어촌 마을. 시간이 멈춘 듯 적요한 동네 어귀 어디쯤 멋스런 벽돌담 앞에 멈춰선 우리에게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다가서는 그. 은률 님이었다.

독립 獨立

시원한 아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손재주가 좋아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는 소년은 명문대 건축학과에 합격해 바닷마을을 나설 때에도 분명 그런 눈빛이었을 게다.

“20대는 여러모로 지기 싫어 치열하게 보냈다”는 은률 님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홀로 서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서울에서 지내려니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디자인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 로고, 간판, 인테리어 등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제법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덕분에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학부생으로는 최초로 디자이너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죠.”

주머니 속 송곳처럼 두드러진 성과들은 그를 세상 속으로 이끌었다. 스카우트 제안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1차 용역사에 합류해 식품 아이템을 발굴하고 브랜딩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원청사였던 글로벌 이커머스 업체가 국내 1위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제품 기획에 올인하던 시기였는데, 그 일을 제가 도맡아 했어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특산물과 제철음식을 찾고, 영상과 디자인으로 스토리를 제품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아이템을 찾고 영혼을 불어 넣어 세상에 내놓는 브랜딩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창업에 관심이 생겼죠.”

회귀 回歸

창업을 결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은률 님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고향의 바다였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로컬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서핑, 커피, 음식, 힐링 등 문화적 키워드들이 강원도 바닷가 도시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명확한 기회였다.

그렇게 막연히 고향에서 만들어갈 무언가를 고민하고 계획하던 무렵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해풍에 꾸덕꾸덕 말린 생선들이었다. 그리고 아내의 권유로 입양한 로니(비숑프리제, 동해형씨 메인 모델)와의 반려생활이 그의 머릿속에서 생선들과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제가 살던 어촌마을에선 겨울철 해풍에 생선을 말려서 먹었어요. 생선을 해풍에 말리면 푸석푸석한 살이 쫄깃해지고, 영양과 풍미도 훨씬 진해지죠.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도 이 맛을 알아서 말려 놓은 생선을 훔쳐가는 고양이와 개들 많았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로니도 역시나 잘 먹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디자인과 브랜딩, 마케팅, 식품 기획 등 10년간 실무에서 쌓은 경험에 30년된 부모님의 어업 경력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풍부한 영양가와 매력적인 맛의 말린 생선을 반려동물 간식으로 만들기 위해 1년간 사업을 구체화했고, 3개월간 기획을 세심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도전 挑戰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반려동물 간식에서 육류나 채소는 원활하게 유통되는 데 반해 생선은 그렇지 못했다. 낯선 소재인 생선을 제품화하는 데는 적잖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실제 반려동물 식품 관련해 알아보고, 공부해야 할 정보가 많았습니다. 하나의 식품을 만들기 위한 고유한 레시피를 확립하기 위한 습도, 시간, 온도부터 보관, 기계 활용법까지 하나도 쉽지 않았죠. 결국 생선이지만 염분을 제거해 짜지 않고, 첨가물 없이도 고유의 향으로 기호성을 높인 제품을 완성했습니다.”

실제 시간과 자연이 말린 생선의 풍미는 날것의 ‘비린내’와는 차원이 다른 ‘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브랜드 명도 ‘향기날 형(馨)’과 바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SEA’를 합성해 ‘동해형씨’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나 하나 은률 님의 손을 거친 브랜드 스토리와 로고, 패키지디자인은 동해형씨의 가치를 높였다. 무엇보다도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신뢰로 이어졌다. 실제 모든 제품은 부산물이 아닌 온전한 생선 원물 그대로를 사용했고, 손질 또한 휴먼그레이드 이상으로 깐깐히 관리했다.

생선의 뼈를 제거하는 필렛(Fillet) 작업을 도맡아 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사람 먹는 것보다 작업이 더 까다롭다”고 신소리를 할 정도라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횟집 자리에 동해형씨 플래그십스토어까지 오픈한 은률 님은 “진짜 도전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제 본격적인 동해형씨의 사업화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양산 시스템을 구축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유통기한을 실온에서 12개월까지 늘리는데 집중하려고 해요. 지켜봐주세요.”

김은률

강원도 고성에서 자연산 원물 생선으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들고 있는 은률 님은
비숑프리제 로니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