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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윤경진 님과 순대가 답하다
[問101] 반려인 101명에게 묻다
by Bean2022.05.24
우리는…매일, 현관문을 열고 세상으로 함께 한 발자국 내딛는 사이! 순대와 나는 각자의 아픔을 가진 채 19년 봄에 만났어. 나는 약 10년 간의 강도 높은 회사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와서, 휴직을 하게 되었어. 불안 증세가 심해서 일주일에 1번도 집 앞 편의점조차 못 나갈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집 근처 호수 공원에서 줄 풀린 새하얀 솜뭉치 같은 강아지가 나에게 달려온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줄곧 무서워하고 싫어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전혀 무섭지가 않더라. 해맑게 웃으며 내 품으로 달려오는 강아지, 폭신한 털의 감촉, 강아지를 잡아 주셔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시는 보호자님을 보며 그날 처음으로 강아지를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날부터 세나개(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유튜브를 정주행 했어.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떤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행복해 보이는 이면에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 미리 알아봤어.
그러다 순대의 파양 글을 보게 되었지. 한창 시바견의 인기가 높은 시기라 신청자가 많았더라구~ 여러 차례의 전화 인터뷰 후에 순대를 입양하게 되었어. 시바견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사회화 훈련이 중요하다는 말에 하루에 5~6번은 산책을 나갔어. 매일 공원에서 걷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정신적으로 건강을 되찾게 되더라. 낫고 보니, 걷는 행위 자체가 우울증 치료에 아주 좋은 거 더라구! 순대의 행복과 무병장수, 나의 평안을 위해 폭설이 와도 태풍이 와도, 서로를 믿고 매일 세상으로 나설 거야.
내가 보는 순대는… 소심한 우리 집 핵인싸 왕자님. MBTI로 치면 왠지 ISTJ 같아. 친한 멈머와 사람에게만 장난꾸러기의 진면모를 드러내거든.
소규모, 특히 1:1로 만나는 세상 모든 강아지는 좋아하는 편이야. 그런데 모르는 강아지가 여러 마리 있는 애견 놀이터에서는 벽에 붙어서 투명개인 척을 해서, 애견 놀이터는 잘 안 가.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만 깨발랄한 찐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면 확실히 내향형 같아.
순대가 보는 나는… 좋긴 좋은데 좀 귀찮은 사람. 순대는 강아지 친구를 좋아하지만, 사람한테는 무관심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심이 없어. 아는 척을 해도 절대 곁을 주지 않고, 만지려고 손을 가까이 대면 홱 피해. 그나마 사람 중에는 엄마를 제일 좋아하기는 해! 산책 많이 해줘서 깊은 애정은 쌓았지만, 만지고 안고 뽀뽀하는 건 아주 귀찮아해.
우리의 일상은…매일 최소 두 번의 산책으로 하루를 보내. 날씨 어플로 매일의 날씨를 확인하고는 알맞은 옷을 꺼내 입고 아침 산책을 시작해. 아침은 2~3시간 정도로 길게 해서 대변 산책도 하고 순대 에너지를 빼는 데에 집중해. 집 근처에 산책 코스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매일 순대가 어떤 코스로 돌지 선택해. 집에서 꺾는 방향, 횡단보도 위치, 징검다리 위치, 좌회전하는 지점, 유턴하는 지점까지 모두 기억하고 집까지 앞장서서 걸어.
나와는 다르게 아주 계획적이고 명석한 녀석이야. 아침 산책은 되도록 순대가 하자는 대로 해주는 편이야. 그래서 봄에는 매일 7km 이상은 걷는 것 같아.
점심쯤 집에 와서는 순대는 쿨쿨 자고 나는 작업을 해. 피곤한 강아지가 행복한 강아지라는 말을 들으니, 산책량을 줄이기가 더 어렵더라구. 대신 저녁 산책은 30분 정도로 짧게 하는 편이야!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좋아하는 건 봄과 가을의 산책. 날씨 좋은 날 하염없이 걷는 걸 좋아해. 한 번은 6시간 이상도 걸어봤는데, 순대는 절대 지치지 않더라. 그저 연신 웃으며 계속 걷더라구! 서로 잘 만난 것 같아. 나뭇잎이 바람에 산들거리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녹지 비율이 높은 우리 동네에서 산책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하고 제일 좋아. 온몸을 햇빛으로 소독하면서 말이지.
싫어하는 건 가끔 만나는 반려견 관리를 소홀히 하는 보호자. 멀리서부터 자동줄로 산책하면서 시선이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으면, 나는 그냥 유턴을 해서 마주치는 상황 자체를 피해. 매번 미리 대응했더니 순대한테는 산책하며 나빴던 기억이 없나 봐. 그 덕분인지 순대는 진짜 순해! 너무 고마운 일이야! 다만, 순대가 사람에게는 무심하거든. 지나가다가 순대를 만나도, 순대는 손길을 홱 피할 거야. 그건 미리 사과할게.
우리가 꿈꾸는 건…테라스나 마당이 딸린 집에 살고 싶어. 몇 백 평의 천연 잔디가 깔린 독채 마당이 있는 독채 애견 펜션에 놀러 갔는데, 우리 부부도 순대도 너무 행복하더라구. 언젠가 한 번은 꼭 살아보고 싶어.
순대가 내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면…사랑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많이 사랑해. 네가 귀찮아하는 나의 모든 행동은 널 사랑한다는 표현이야.
매일 최소 두 번의 산책, 양치, 매주 귀 청소, 털 빗기, 발톱 깎기, 매달 동물 병원 진료받기, 쓰다듬기, 껴안기, 뽀뽀하기, 장난감 던지기, 등등 모두 너가 무병장수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귀찮아하지 말아 줘. 그리고 지금처럼 엄살은 계속 부려주길 부탁해. 그 덕에 엄마가 눈치채고, 아주 사소한 일로도 동물 병원을 가게 되니까. 네가 크게 안 아프기 전에 눈치채는 데에 큰 도움이 돼!
많이 많이 사랑해. 엄마랑 아빠랑 건강하게 20년만 살자!
쉿! 이건 비밀인데… 순대 이름의 의미를 많이 물어보더라구. 특히 어르신들은 잘생긴 강아지에게 순대가 뭐냐고, 개명해 주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어. 남편의 최애 음식이 순대야. 남편이 강아지가 생긴다면 꼭 ‘순대’로 이름을 짓는 게 중학생 때부터 꿈이었대. 그래서 그 꿈을 이루어 주기로 했어. 그게 다야. 시시하지.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