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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스런 반려커플의 완성
[PEOPLE] 편집숍 펫데이브 대표 이재민 님을 만나다
by Eugene2022.05.11
요즘 해방촌은 가장 트렌디한 ‘핫 플레이스’ 중 하나다. 골목 골목 컨셉츄얼한 카페와 레스토랑, 레트로 무드의 부티크들이 즐비하다. 매끈한 강남과는 질감의 깊이부터 다르다.
하지만 해방촌의 매력에 푹 빠진 힙스터들은 알까? 해방촌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문화적 코드의 근간이 철저한 ‘아웃사이더’라는 걸.
8.15 해방 후 만주, 하얼빈, 연해주 등지에 흩어져 있던 이주민과 무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귀국해 사대문 밖 남산 끝자락 동네에 처음 터를 잡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모여들면서 아싸 끝판왕 동네로 완성된 곳이 바로 해방촌이다.
역사와 트렌드의 아이러니 한 가운데 위치한 바로 그 해방촌에서 이재민 님을 만났다.
그럼 그렇지, 패션피플 1세대였어
해방촌 초입 5평 남짓한 반려동물 편집숍 ‘펫 데이브(feat. DAVE). 직접 국내 총판을 하고 있는 ‘버디버더(Buddy Budder)’ 땅콩버터와 팬케이크를 비롯해 키치하고 개성 넘치는 반려동물MD로 가득한 공간.
끼릭~. 10분 가량 약속 시간에 늦는다던 그가 잭러셀 테리어 ‘큐비’를 옆에 안고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포스가 장난 아니다.
네이비 체크 패딩코트에 화이트 톰브라운 셔츠의 과감한 컬러 믹스매치, 그리고 애스닉한 패턴의 슬립온과 도트 무늬 양말의 마감. 여기에 큐비의 댄디한 그레이 터틀넥 니트까지.
그야말로 스타일 깡패다.
무엇보다 나이를 잊은 그의 미친 패션 센스의 근원부터 궁금해졌다.
“1989년부터 패션 회사에서 일하며 이태리 밀라노로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의류와 액세서리 등 패션 아이템들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바잉 MD 일을 했었죠. 퇴사한 후에는 이태리에서 원단과 가죽을 수입했고, 2002년부터는 수입한 가죽으로 직접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스타일이 남다르다 했더니… 역시나 멋과 풍류를 아는 ‘패피’ 1세대.
이태리 테너리(가죽 생산 공장)에서 수입한 질 좋은 가죽에 그의 감각을 더해 빚어낸 구두는 시장에서 꽤 인기가 높았단다. 주요 백화점을 비롯해 오프라인 매장도 여럿이었다고.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변하고 구두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꽤 큰 규모로 성장했던 회사도 10년만에 정리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탄성의 회복, 그리고 새로운 시작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사업에 쏟은 정신적, 신체적 헌신의 대가는 건강이었다.
재민 님은 오랜 시간 동안 지친 몸을 돌보는데 집중했고,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때는 홍콩에서 몇 개월, 태국에서 또 몇 달,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 대만으로 목적지를 바꿔가며 유랑하듯 여행을 다녔어요. 세속의 관계나 관심을 끊고 지낸 시간이었죠. 그땐 뭘 해야겠다는 어떤 계획도 없었습니다.”
‘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고,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멀어진 거리만큼 팽팽해진 세상의 끈은 그를 당겨 다시 세상 속으로 던져 놓았다. 그것도 아주 엉뚱한 곳으로.
“우연찮게 반려동물 수제 간식 사업을 시작하는 동생의 제안으로 해방촌에 오늘의 ‘펫데이브(feat. Dave)’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개를 무척 좋아했고, 많이 키워보기도 해서 깊은 고민 없이 결정했죠.”
큐비가 일깨운 소소한 행복의 가치
반려동물 편집숍은 그의 이전 경력과는 내용과 규모 면에서 크게 달랐다. 게다가 첫 해는 적자를 면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큰 비즈니스를 할 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단다. 왜냐고? 옆에 든든한 친구인 ‘큐비’가 함께였으니까.
“큐비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이었어요. 펫데이브를 시작하고 얼마 후였죠. 큐비는 친한 후배가 키우던 녀석이었는데, 사정이 있어 새 주인을 찾고 있었어요. 당시 공항 활주로에서 새 쫓는 일을 하던 큐비를 우연하게 만나게 됐고, 품 안에 안긴 요 딴딴한 녀석에게 순식간에 반해버렸어요. 그리고 무작정 집으로 데려오고 말았습니다.”
닥스훈트, 시츄, 비글, 푸들, 패키니즈 등 많은 반려견들과 오랫동안 함께했고, 길게는 20년 넘게 돌보다가 모두 하늘나라로 보냈던 터라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그이지만, 사랑스런 큐비 앞에선 모두 리셋이 되어버렸다.
인터뷰 중에도 수시로 큐비를 챙기는 재민 님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으니.
“이전에 키우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좋은 간식을 먹이거나 옷을 입혀본 적이 없었어요. 이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죠. 먼저 간 녀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큐비에게 좋은 것들을 찾아서 먹이고 입히는 게 재미있어요. 큐비를 가방에 넣고 카페, 레스토랑, 삼겹살집… 동반 가능한 모든 곳을 함께 다닙니다. 진짜 인생 친구가 된 것 같아요.”
큐비는 얼마 후면 9살이 된다. 사람 나이로 치면 아마 재민 님과 비슷한 연배일 게다. 나이뿐 아니라 잭러셀테리어 특유의 호기심과 고집은 세상이 규정해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재민 님의 삶의 궤적과도 무척 닮았다.
친구 같은 반려견과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에 뒤늦게 눈 뜬 베이비붐 세대 남성은 결이 완전 다른 ‘新인류’라 할만큼 ’스윗(Sweet)’ 그 자체였다.
힙한 아싸 동네와 무척 잘 어울리는 이 묘한 커플이 궁금하다면 해방촌으로 나서보는 건 어떨까. 지금 바로.
後 Talk.
미국 버디버더(Buddy Budder) 땅콩버터와 팬케이크의 한국 총판권자인 재민 님은 인터뷰를 마치고 얼마 후 이 제품과 관련하여 심각하고 억울한 유통 분쟁을 겪었고, 스스로 이 혼란을 마무리 중이다.
그의 분투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