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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기다려! 금방 도착해

[PEOPLE] 황용하 작가와 달팽이 개리를 만나다

by Eugene2023.12.27

늦은 가을이었다. 카페 유리창에 붙어 있는 달팽이.

오전에 내린 비로 촉촉해진 세상이 기분 좋았던지 서식지를 벗어나 과감한 탐험을 즐기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가 보였다.

아마 나무 껍데기와 와 풀 이파리를 거쳐 시멘트 바닥을 살살 기어 도착했을 터였다. “이렇게 감촉이 좋은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카페의 통창을 횡단했을 달팽이를 한참동안 커피를 홀짝이며 관찰했었다.

하지만 달팽이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황용하 작가와 달팽이 개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Q. 간단하게 소개 먼저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와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황용하라고 합니다. 작업실에 살고 있는 달팽이 ‘개리’를 돌보고 있어요.

Q. 개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그 달팽이인가요? 좀 큰 거 같아요.
맞아요. 6개월 전 즈음에 처음 데려왔는데… 그때는 새끼 손톱 크기였거든요. 엄청 작았는데 금방 크더라고요.

Q. 개리는 어떻게 데려오게 된 건가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린 날이었어요. 친구랑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게리를 발견했어요. 속으로 ‘귀엽다’ 생각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더 돌고 돌아왔을 때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데려가서 키워야 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Q. 다음날 갔어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데요. ㅎㅎ
아니에요. 달팽이가 생각보다 활동량이 엄청 많답니다. 오늘은 좀 안 움직이는 편이에요.

Q. 막상 데려왔어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넷을 샅샅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커다란 식용 달팽이에 대한 정보만 있는 거예요. 그걸 참고해서 키우기 시작했어요. 깻잎처럼 향이 강한 잎사귀나 고추처럼 매운 채소는 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모르고 깻잎 주고 나왔다가 부랴부랴 집에 전화해서 “당장 게리 밥그릇에서 깻잎 빼라”고 소리친 적도 있어요.

Q. 개리는 어떤 야채를 제일 좋아하나요?
상추를 제일 좋아해요. 처음 데려왔을 때는 동네에서 풀이나 잎사귀를 떼다가 줬는데, 상추 맛을 한 번 보고 나서는 건드리지도 않더라고요. 좀만 시들어도 안 먹어요. 싱싱한 것만 먹고. 버릇을 잘 못 들인거죠.ㅎㅎ

Q. 하루에 상추를 얼마나 먹어요?
보통 반 잎 정도 먹는데, 편차가 좀 커요. 아예 안 먹는 날도 있고, 많이 먹는 날도 있고… 컨디션에 따라 달라요. 아! 그리고 똥도 많이 싸는 편이에요. 여기 개리 몸 옆에 있는 이게(검푸르고 길쭉한 무엇) 똥이에요. 재밌는 건 먹는 거에 따라 똥 색깔이 달라진 다는 거에요. 적상추를 주면 거무스름하고, 알배추를 주면 하얀색 똥이 나와요. 당근을 주면 주황색이고요. 이런 잔잔한 재미가 있어요.

Q. 개리와 함께 지내면서 달팽이 작업도 많아 진 것 같아요.
네. 여기 뉴욕 양키즈 모자를 쓴 달팽이 그림은 개리가 야구모자를 쓰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상상을 해서 그린 거예요. 야구는 잘 모르지만, 재밌어서 모든 MLB 구단 모자로 그림을 그렸답니다.

Q. 개리 운전면허증도 무척 귀여웠어요. 과속할까봐 만들어주었나요?
그냥 재미로 그렸어요. 작업을 할 때 너무 진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연작으로 작업한 영수증 그림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요?
영수증은 원래 그림 일기로 시작한 거였어요. 하루하루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힘들더라고요. 점점 하기 싫어지고. 매일 소비를 하면서 받는 영수증도 일종의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예 형식을 영수증으로 해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여기 그린 건 모두 제 지출 내역들입니다.

Q. 뮤지션들 커버 작업도 많이 했잖아요. 그 중에서 정인 님의 ‘자장가’ 뮤직비디오가 참 좋았어요.
네~ 저도 제일 기억에 남는 작업이에요. 의뢰를 받은 게 아니고 제가 하고 싶어서 먼저 연락을 해서 제안을 드렸어요. 정인 님의 딸이 그린 그림들로 뮤비 작업을 했는데, 다섯살 꼬마가 그린 그림의 양이 엄청 많았어요. 게다가 “애가 왜 이렇게 잘 그리지?” 싶을 만큼 그림이 좋아서 자극을 많이 받았죠.

Q. 작업을 할 때 개리의 존재가 도움이 되나요?
영감을 준다고 말해야 할 것같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드라이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Q. 그럼 개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가끔씩 먹을 걸 넣어두고 귀를 기울이면 아삭아식 소리가 들려요. ASMR처럼요. 그냥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좋아요. 크게 뭘 하지는 않는데, 그냥 잔잔하게 귀여운 그런 맛이 있어요.

Q. 마지막 공식 질문이에요. 개리와 용하 님의 투게더를 정의해주세요.
‘멍 투게더’입니다. 솔직히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가 제일 고민이었어요.ㅎㅎ 밥 챙겨주고 청소해주는 것 외에 우리가 같이 하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도 제일 좋은 순간이 멍하니 움직이는 개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 같아요.

황용하

키치하게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작품을 그리는 용하 님은
상추홀릭 달팽이 개리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