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 읽기

자연은 거들 뿐, 마음이 다 했지

[PEOPLE] 섬 친구 윤정근, 조윤진 님을 만나다

by Summer2022.05.11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존재를 한 번 잃거나, 혹은 잃을 위기에 놓이면 사람은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깨달음도 잠시, 늘 그렇듯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반면 어떤 이는 그 깨달음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아픈 반려견을 위해 제주의 식재료로 자연식을 만들다 브랜드 ‘섬벗’을 운영하게 된 윤정근, 조윤진 님처럼 말이다.

제주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 ‘빅시’ ‘그레이’와 함께 짧은 봄을 만끽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썸띵, 오버 더 사료

Q 우선 섬벗 이야기부터 시작할게요. 섬벗은 무슨 뜻인가요?
섬에 살고 있는 친구란 뜻이에요. 제주에 살고 있는 반려견 친구들로부터 시작된 브랜드이기에 섬벗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Q 아픈 반려견을 위해 직접 자연식을 만들어주던 게 섬벗의 시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롱티와 숏티라는 두마리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건강하고 활발하던 아이들이 10살이 넘어가면서 점차 아프기 시작했어요. 수술도 여러 차례 받으면서 기력이 점차 떨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특히 롱티에게는 암이라는 무서운 병이 찾아왔죠. 병색이 짙어지면서 점차 삶의 의욕도 약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평생 먹보로 살았던 아이들이 처방식 사료를 먹으며, 점점 식욕도 잃는 걸 보면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연식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Q 직접 만들어준 자연식이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었군요.
네~ 롱티는 3개월 시한부였지만, 자연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점차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너무나 고맙게도 3년이란 시간을 저희와 함께 더 보내고 떠났어요.

Q 원래 레스토랑을 운영했다고 들었습니다. 음식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섬벗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됐나요?
음식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 아이를 살리겠다는 간절함이 더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식재료를 자주 접해본 경험도 도움이 됐겠지만,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도 신선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음식을 먹을 때 오래 건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Q 동물을 위한 완전 식품은 영양의 밸런스를 맞춘 사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사료와 비교했을 때 자연식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여러 끼니에 식사를 하면서 똑같은 음식이 아닌, 다양한 음식을 먹기에 다양한 영양소 섭취가 가능해요. 그러나 반려견들은 주로 한가지 음식인 사료를 주식으로 먹죠. 간식을 먹긴 하지만 주로 주식이 한 두 가지로 정해진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었을 때 영양소나 수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어요. 다행히 자연식은 단일 사료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가지 고기로 만들고 각 고기에 들어가는 부가 재료들을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하여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Q 섬벗을 찾는 고객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장기 고객들이 많으세요. 건강하고 어린 반려견들의 비율도 많지만, 저희 롱티와 숏티처럼 아픈 환견이나 노견의 비율도 꽤 높습니다. 노견이나, 환견의 보호자들께서 섬벗을 먹고 아이의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고, 활력을 찾았다는 리뷰를 주실 때가 가장 감사해요. 저희가 섬벗 브랜드를 만든 이유였으니까요.

Q 섬벗의 고객 문의에 직접 정성스럽게 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고객과의 소통에도 사연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으세요?
노견을 하늘나라에 보낸 보호자님이 연락을 하셨던 적이 있어요. 아이가 떠나기 전에 저희 자연식을 맛있게 먹였던 게 본인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늘 맛없는 처방식과 약만 먹던 아이가 저희 자연식을 먹을 때만은 맛있게 먹고 좋아하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으셨대요. 저 또한 같은 경험을 했기에 같이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Q 섬벗이 만드는 화식은 무엇이 다른가요?
우선 섬벗의 자연식은 100% 식재료로만 만듭니다. 일부 자연 화식의 경우 사료와 동일한 영양성분을 맞추기 위해 인공영양소를 넣어요. 국내 화식 시장에서 이 영양성분을 맞추는 게 주식으로 급여할 수 있는 기준인 것처럼 마케팅이 되어 있어서 소비자들도 사료에 맞춘 영양성분을 찾으세요. 건강한 반려견들은 문제가 없지만 아프거나 나이가 든 아이들은 인공영양소를 배출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어요. 일부 영양소는 음식과 같이 조리했을 때 영양소가 파괴되기도 하고요. 저희도 인공영양소를 넣는 걸 고민했지만, 저희와 같은 마음을 가진 반려인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인공영양소 대신 다양한 부가재료를 넣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Q 모든 메뉴에 제주산 톳과 감태가 들어간 게 특이하더라고요.
서양의 자연식 레시피를 연구할 때 칼슘, 비타민 등이 부족한 부분을 위해 별도로 해조칼슘파우더를 급여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톳과 감태는 바다의 불로초라 불릴 만큼 훌륭한 식재료입니다. 인공영양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칼슘, 비타민, 플로로타인, 카테틴, 후코이단 등 우수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어요. 현재 톳과 감태는 섬벗의 전 메뉴에 들어갈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재료예요.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제주도니까

Q 빅시, 그레이와 함께하는 제주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다른 반려견 가정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비슷해요. 매일 집 주변 바다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쉬는 날에는 빅시, 그레이와 제주도 여기저기를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어쩌다 보니 아이들 SNS 계정을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아져서 빅시랑 그레이 사진이나 영상도 많이 찍어주려고 해요.

Q 원래 제주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도시와 제주의 삶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저희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로 이주를 했어요. 도시와 제주에서의 삶은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편리함으로는 도시를 따라갈 수가 없죠. 수많은 편의시설, 배달, 문화생활 등 도시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제주로 와서는 멀어졌어요. 처음엔 많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매일매일 다른 바다풍경, 하늘의 구름모양,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풀의 색 등등. 자연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도시에서는 몰랐던 새로운 행복들이 생겼어요. 평생을 살았던 서울인데, 잠시 서울을 다녀올 때 제주 공항에 내려서 맡는 상쾌한 공기에 숨이 확 틔어지는걸 보니 이제는 제주에 완전히 적응한 거 같아요.ㅎㅎ

Q 반려인으로서 제주살이에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언가요?
제주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무엇보다도 언제든 반려견들과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예요. 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신선한 공기와, 풀,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해요. 그레이와 빅시는 자연에서 킁킁거리며 뛰어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뛰노는 모습을 볼 때면 제주에서 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도시에 사는 중대형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산책할 때 주변 이웃들과 마찰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주는 아무래도 대형견 아이들도 많고, 그런 부분들에 열려 있는 분들이 많아서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반면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을 있을 것 같습니다.
불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불편한 부분은 있어요. 제주도는 믿고 갈 24시간 동물병원이 마땅치 않아요. 주말에 영업을 안 하는 병원이 대부분이고요. 아이들 응급상황 시에는 다니는 동물병원 원장님께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병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죄송스럽죠. 또한 아직 반려견 장례식장이 없어요. 큰 수술을 하는 경우나 장례를 해야 할 때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부분이 많이 아쉬워요.

Q 진짜 친한 지인이 반려견과 함께 제주여행을 온다면 어디를 추천하겠어요?
함덕해수욕장과 함덕서우봉 사이에 있는 잔디광장이요. 잔디가 이렇게 넓게 드리워진 해수욕장이 거의 없을 거 같아요. 반려견들 산책 코스로는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날이 좋으면 함덕서우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도 보이고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반려견과 산책을 하면 굉장히 힐링이 되더라고요. 저희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소라 자주 산책을 가기도 하고, 날씨 좋을 때는 돗자리에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피크닉을 하기도 해요.

이별은 기억하고, 만남엔 충실하고

Q 빅시와 그레이도 소개해주세요. 어떤 아이들인가요?
빅시와 그레이는 제주에서 유기견으로 만나 입양했어요. 그레이는 학대 경험이 있어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성격을 갖고 있지만, 믿음을 가진 상대에게는한없이 친절하고 배려해주는 믿음직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빅시는 그레이를 입양하고 난 후에 만났죠. 당시 수개월간 저희 지역에서 떠돌고 있다는 내용을 지역 단톡방에서 봤었는데 어느 날 저희 앞 건물 공사장에 묶여 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주인을 찾아주려고 유기견 보호소에 보냈는데 찾지 못했죠. 당시에 심장사상충에 걸려 있는 상태여서 안락사 명단에 오른걸 알고 저희가 바로 입양했습니다. 빅시는 그레이와는 정반대 성격을 가졌어요. 돌진하는 걸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것도 별로 없는 나홀로 직진 타입이에요. 말도 잘 안 들어 사고도 자주 치지만 순하고 댕청미가 있는 게 빅시의 매력이죠.

Q 빅시는 뚱스키로도 유명합니다.
빅시는 입양 후에 꽤 오랜 기간 아팠어요. 입양할 때 심장사상충 4기여서 수의사님이 치료 중에 잘못될 수도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당시 영양실조까지 있던 상태여서 독한 심장사상충 치료를 이겨낼 체력도 뒷받침되지 못했죠. 다행히 심장사상충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에 얼마 후 원인 모를 발작증상과 호르몬 이상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아팠던 상태여서 잘 먹고 체력을 만들어 아이를 살리는데만 매달렸어요. 현재는 다행히 병이 악화되거나 다른 병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 시간 동안 빅시가 살이 많이 쪘죠.

Q 다이어트나 건강관리를 따로 하고 있나요?
빅시에게 무리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살을 빼고 있어요. 빅시의 추정나이도 적지 않다 보니 많이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호르몬 때문인지 금방 지치는 편이예요. 중간에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보니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잠시 다이어트를 쉬기도 했어요. 감량 목표를 조금씩 잡고 빅시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빼주기 위해 조금씩 빼다보니 초기 살이 쪘을 때보다 5kg 감량한 상태에요. 어떤 분들은 뚱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빅시가 저희 곁에 살아서 아프지 않고 건강히 이만큼 감량해준 것만으로도 빅시에게 매일 감사하고 있어요.

Q 빅시와 그레이가 있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 생각이 안 날 수 없을 텐데요. 펫로스와 마주하는 방법이 있나요?
하늘나라로 간 롱티, 숏티와 함께한 시간은 15년, 18년이예요. 이러한 시간을 잊는 것은 불가능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못해줬던 것, 소홀하게 했던 것만 생각이 나서 너무 괴로웠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이 아이들을 떠올릴 때 괴로운 마음이 든다면 롱티와 숏티가 더 속상해할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우리가 함께했을 때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들을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행동들은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레이와 빅시에게 더 집중하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Q 빅시, 그레이와 함께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궁금해요.
두 아이들을 구조했던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주도는 워낙에 유기견이 많아요. 제주도에서 유기견을 보는 건 정말 흔한 일이예요. 모든 아이들을 구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구조할 수는 없으니까 괴로워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아요. 그레이와 빅시도 마찬가지였어요. 저희는 이미 노견 두 아이가 있었기에 입양계획이 없었는데 그레이와 빅시에게는 망설임 없이 가족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묘하게도 그레이와 빅시의 눈을 처음 마주치는 순간 ‘내가 이 아이의 엄마가 되겠구나’ 라는 느낌이 온 몸을 감싸더라고요. 그때 처음 마주했던 그 얼굴을 잊지 못해요.

Q 마지막으로 섬벗 가족의 앞으로 계획을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부분, 사업적인 부분 모두 좋습니다.
저희 가족의 계획이자 바람은 앞으로도 그레이와 빅시와 함께 하루하루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아프지 않고 가족들이 건강히 서로를 온전히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는게 소박하지만 꿈이기도 해요. 그리고 얼마 전 18살인 우리 숏티가 떠났어요. 치매도 있어서 손길이 많이 필요했죠. 숏티에게 들였던 시간만큼 저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기견 아이들을 위한 도움의 방향을 올해는 찾을 계획이예요.
그리고 섬벗은 높은 포부를 가지고 유명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마케팅이나 홍보에 비용을 쓸 계획도 없고요. 하지만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어떤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브랜드로 남고 싶어요. 저희 아이들도 매일 먹는 밥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줬을 때 걱정하지 않고 믿고 급여할 수 있도록 저희는 항상 건강하고, 깨끗하고, 맛있게 오래도록 만들고 싶어요.

윤정근 & 조윤진

제주의 자연을 담은 식재료로
반려동물 화식을 만드는 윤정근 님과 조윤진 님은
빅시, 그레이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