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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타고 출근하는 나, 어떤데
[PEOPLE] 김소끼 수의사와 반려 바이크를 만나다
by Eunju2023.09.20
아메리칸 모터사이클의 상징, 할리 데이비슨(?). 두둥- 두둥- 심장을 타격하는 배기음을 울리며 할리가 다다른 곳은 클럽이 아니라 동물병원 앞이다.
익숙하게 바이크를 주차하는 김소끼 님은 24시 동물의료센터 소속의 수의사 선생님. 윈드자켓을 벗고 의사쌤 근무복으로 갈아 입으면 짜잔, 본캐의 시간이 시작된다.
황금 같은 주말에 당직도 서고, 응급 환자가 생기면 새벽에도 바이크를 달려 출동하지만... 소끼 님은 행복하다. 사랑하는 동물과 가장 가깝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도 열심히! 취미도 열심히!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소끼 님의 슬기로운 수의사생활에 귀를 기울였다.
Q.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울산 소재의 24시 동물의료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의사 김소끼입니다.
Q. 수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동물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간직해오던 꿈이에요. 상투적인 답변이지만 '좋아한다'는 이유가 전부였어요.
Q.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서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아요. 직업 만족도를 점수로 환산하면 몇 점인가요?
100점 만점에 ?이요. 일단 출근하기 싫은 적도 없고, 월요병도 없는 걸로 봐선 천직인 것 같아요. 병원에 오면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거든요. 정교하게 손을 써서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고, 치료 결과를 눈으로 확인 가능하다는 임상적인 특징도 제 성향과 잘 맞아요.
Q. 수의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환자들이 건강을 찾고 돌아갈 때 뿌듯해요. 보호자에게 반려동물은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거든요. 특히 위독한 아이가 다시 살아났을 땐 무척 벅차요. 생명을 살리는 일은 정말로 고귀한 것 같아요.
Q.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는데, 지금 반려동물을 입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일 아픈 동물을 대하면서 책임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어요. 저는 옛날부터 강아지, 토끼, 새, 물고기, 곤충(!) 등 다양한 동물을 키웠는데요. 최근에 키웠던 햄스터 '차돌이'를 해바라기별로 떠나보낸 후 입양 생각이 없어졌어요. 차돌이는 18개월 때 ‘헤만지오살코마’라는 악성종양에 걸려 6개월의 약물치료를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감정소모가 컸던 것 같아요.
Q. 이별의 슬픔은 말로 다할 수 없죠. 동물을 많이 만나는 만큼 이별도 셀 수 없이 겪었을 것 같아요.
수의사 일을 하다보면 이별을 일상처럼 마주하게 돼요. 저는 안락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요. 고통 받는 반려동물과 그런 아이를 차마 보낼 수 없는 보호자를 보면 정말 슬퍼요. 제가 과연 한 생명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 매번 고민을 해요. 그리고 제가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 죄책감 등 감정들이 모두 진심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언젠가 무뎌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 일을 하는 동안 진심을 다하겠다고 항상 다짐해요.
Q. 수의사의 하루 주요 일과를 설명해주세요.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종합병원 같은 곳이에요. 오전에 출근해 입원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처치를 해요. 그 후엔 보호자님께 연락해 상태를 설명하고, 전자 차트를 확인하며 진료할 환자의 치료를 계획해요. 실수가 없도록 검사 의뢰지를 미리 만들고 처치할 주사와 약물도 고민합니다. 수시로 외래 진료도 봐야 하고요. 제가 맡은 일 중 가장 특별한 건 영상센터에서 MRI와 CT 촬영을 진행하는 업무에요. 오후 진료가 끝나면 입원환자 관리와 저녁 주사 처치를 한 번 더 하고 차팅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합니다.
Q. 브이로그를 보니까 병원에서 지내는 동물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짧게 소개해주세요.
원장님께서 구조됐거나 치료를 포기했던 동물들을 거두신 덕에 복작복작 지내고 있어요. 제가 이 병원 오기 전부터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던 고양이 친구 두 마리만 간단하게 소개할게요.

꼬맹이는 13살 할머니인데 성격이 무던해요.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고 자주 귀찮아해요. 귀여움 포인트는 전용 옷장이 있다는 거예요. 저보다 옷이 많은 패셔니스타라니까요. 옷을 입혀도 가만히 있어서 고양이 병동에서는 꼬맹이 패션쇼가 자주 펼쳐지죠.

순이도 10살이 다 된 장수 고양이예요. 순해서 순이라 부르지만, 고집도 세고 호불호가 확실해요. 그리고 자기가 엄청 힘이 센 줄 알아서 대형견을 만만히 보는 게 웃기고 귀여워요. 개인적으로 저의 최애 고양이랍니다.
Q. 수의사의 시선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반려문화는 무엇인가요?
동물병원이 과잉진료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심지어 진료가 불필요하다고 오해한 보호자님이 검사 재진일에 오지 않은 일도 많아요.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도 그런 생각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인식 개선에 수의사들의 노력이 우선해야 겠지만요.
Q. 반려인이 좋은 병원을 찾는 건 늘 숙제인데요. 수의사 입장에서 좋은 동물병원을 구분할 수 있는 팁을 준다면요?
저희 병원은 정기적으로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고 수의사들끼리 최신 수의학 정보를 공유해요.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V-clamp 심장판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되었죠. 이처럼 병원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어떤 소식을 홍보하고 알리려고 노력하는지 살펴보면 좋은 병원을 구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반려동물을 맡긴다면 그곳은 믿을 수 있는 병원이에요.
Q. 바이크를 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바이크 타는 여자분을 보고 멋지다 감탄하고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아침에 뜬금없이 바이크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시(?)라고 해야할까요?
Q. 라이딩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유! 바이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제일 큰 매력이에요. 경치와 날씨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고, 멋진 스팟을 발견하면 멈추고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자유로움도 좋아요. 속도감도 매력적이죠.
Q. 지금 타고 계신 반려(?) 바이크를 소개해주세요.
지금은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 ‘소티’와 야마하 R3 ‘삼끼’ 두 대를 반려(?)하고 있어요. 직접 교감하는 관계라서 반려 바이크라는 말이 딱 맞아요. 할리는 만세하고 타는 오토바이로 잘 알려져 있는데 말발굽 배기음이 매력적이랍니다. 그리고 R3은 서킷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다이나믹한 스포츠 바이크에요. 성향이 정반대인 바이크들이라서 기분에 따라 골라 타는 재미가 있어요.
Q. 삼끼를 타고 5일간 전국일주를 하셨더라고요. 코스가 어떻게 됐나요?
울산에서 출발해서 해안도로를 타고 강원도 고성까지 올라 갔다가 서울을 찍고 충청도와 전라도를 지나 땅끝마을 해남, 남해, 밀양까지 들른 후 울산으로 복귀하는 코스였어요. 대한민국 해안을 따라 동그랗게 한 바퀴 돌았죠. 설악산 숙소에서 뜨끈하게 즐긴 노천탕, 경관이 기가 막히던 울산바위, 서울의 바이크 카페와 잠수교, 시간 맞춰 물에 잠기던 웅도 유두교, 대나무가 운치 있던 담양 한옥 스테이, 밀양에서 맛 본 수육찜… 매 순간들이 재밌고 신기했어요. ?
Q. 전국일주 중 기억에 남은 경험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날씨 운이 정말 없었어요. 둘째 날 강원도에서 바이크가 휘청거릴 정도의 거센 강풍을 만났고요. 4~5일째는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죠. 그리고 남해의 유명한 등나무를 찾아갔을 땐 폭풍우에 꽃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보고 왔어요. 그때 저와 똑같은 처지의 부부가 제게 참외를 하나 선물로 주셨어요.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왔는데, 그 참외가 인생에서 제일 맛있는 참외였어요.
Q. 전국일주를 마치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성취감, 그리고 신기하게 상실감도 느껴졌어요. 20대 마지막을 앞둔 상황에서 제일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목표의 부재가 생각보다 컸어요. 며칠은 이상한 감정들로 혼란스러웠어요. 그래도 만족감이 컸답니다. 인생을 살면서 부적이 되어줄 깊은 생각을 하게 됐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Q. 평소에는 어떤 코스로 라이딩을 하시나요?
바다를 좋아해서 울산에서는 주로 해안가를 따라 달려요. 무룡고개라고 제가 좋아하는 와인딩* 산길도 자주 다니고, 마음에 드는 카페나 맛집을 하나 정하고 라이딩을 가기도 합니다.
*와인딩: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계속 핸들을 조타하며 달리는 행위
Q. 언젠가 다시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어떤 친구를 키우고 싶나요?
저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요.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어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편)라서 우연하게 만난 친구한테 마음이 끌린다면 함께 할 것 같아요. 그 날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요.
Q. 미래의 반려동물과 가장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고양이와 라이딩하는 외국인을 본 적이 있어요. 고양이 머리에 맞는 작은 헬멧을 씌워주고 함께 바이크를 즐기는 모습이 귀엽고 즐거워 보여서, 저도 반려동물과 같이 라이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래의 반려동물이 대담한 친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Q. 마지막으로 수의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당부 하나 해주세요.
건강검진, 예방접종, 심장사상충/기생충구제, 중성화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요. 이 네 가지만 잘 지켜줘도 심각한 질환을 겪을 일이 큰 확률로 줄어요. “중성화 빨리 할 걸 그랬어요” “심장사상충 약 잘 먹일 걸 그랬어요” “병원에 와서 간단한 건강검진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후회를 하는 보호자님들이 많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랍니다.
Q. 세상 모든 동물들과 소끼님의 ‘투게더’를 정의해주세요.
‘아프지 말고’ 투게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