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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와 기타만 있으면 어디든
[PEOPLE] 류연덕 루트니스트와 뽀뽀를 만나다
by Eunju2023.09.13
어른들이 한숨처럼 읊조리던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만큼 삶을 겪으며 인생은 짧고 견생은 더더욱 짧다는 걸 실감한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 삶을 소풍처럼 살라는 옛 현자의 명언이 떠오른다. 루트니스트 류연덕 님은 독일에서 음악을 하며 사랑하는 뽀뽀와 살고 있다.
잔잔하고 그윽한 류트(Lute)의 선율처럼 여유로 가득한 그의 스토리를 따라가보자. 당신도 소풍하듯, 여행하듯 살고 싶어 질 것이다.
*류트 Lute
16~18세기 유럽에서 널리 유행했던 기타와 유사한 발현악기. 이탈리아식과 독일식으로 나뉘며, 연주자는 루트니스트(Lutenist)라 한다.
Q.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뽀뽀와 같이 살고 있는 루트니스트 류연덕입니다.
Q. ‘류트’는 처음 봐요. 동양의 비파와 비슷하게 생겼어요. 악기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세요.
옛날 페르시아 부근 아랍권에 ‘우드’라는 현악기가 있었어요. 그게 이탈리아로 전파돼 류트가 만들어졌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어요. 시간이 흘러 화성이 점차 발달하면서 화음을 연주할 수 있게끔 발전했어요. 줄이 많은 만큼 바로크 음악은 접근성이 쉽지 않고 류트도 만만치 않습니다.
Q. 접하기 어려운 악기인데, 어쩌다 류트를 공부하게 됐나요?
류트는 기타리스트의 판타지에요. 다들 관심은 있는데 막상 배울 엄두를 못 내는 악기죠. 졸업 후 베를린에서 진로를 고민하다가 우데카(Udk 베를린 국립 예술대)의 교수님과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대뜸 류트를 주시더니 연주해보라 하시더라고요. 현악기인지라 기타와 메커니즘이 비슷하거든요. 제 연주를 듣고는 함께 공부해보자 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Q. 꼭 영화 같은 서사네요. 지금 지내고 있는 뉘른베르크는 어떤 곳인가요?
예술에 있어 역사적인 장소에요. 캐논 변주곡으로 유명한 파헬벨(Pachelbel)과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가 뉘른베르크 출신이에요. 고성이 있는 오래된 도시에서 고음악을 공부하고픈 꿈을 이룬 셈이죠.
Q. 연덕 님의 음악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어릴 때는 테크니컬 한 밴드를 좋아했어요. 특히 ‘익스트림’의 기타리스트 누노 베텐코트의 팬이었고, 지미 헨드릭스와 레드 제플린의 하드 록이 학창시절 제 마음의 고향이 되어 주었죠.
Q. 밴드 음악과 록에 관심이 많았군요. 그런데 고음악(The early music)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음악은 재즈와 클래식의 장점을 고루 갖고 있어요. 재즈는 정답이 없고, 즉흥적인 창의성이 필요해 어려웠어요. 반대로 클래식은 형식이 정해져 있지만 답답했죠. 그래서 즉흥적인 요소가 혼합된 클래식 음악인 고음악에 빠지게 됐어요.
Q. 연덕 님이 연주할 때 뽀뽀의 반응은 어떤가요?
그냥 가만히 잠을 자요. 악기에 집중하는 제 옆에서 잠들기도 하고 기타 가방에 쏙 들어가서 자기도 해요.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요.
Q.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웨스티를 많이 키우는 것 같아요. 예술가랑 웨스티의 접점이 있다면 무엇일 것 같나요?
독립적이라는 점? 뽀뽀는 혼자서도 잘 있어요. 그래서 작업에 집중하거나 공부에 매진할 때 서로 편하죠.
Q. 뽀뽀는 함께 독일로 떠날 계획을 하고 데려왔나요?
네. 원래 강아지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본가에서 키우는 다른 강아지도 있다 보니, 뽀뽀를 독일로 데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뽀뽀 여권이 있던데요! 어떻게 발급받은 건가요?
한국에서 독일로 데려갈 때는 동물병원에서 검역 서류를 준비해 갔는데, 독일에서 한국으로 데려올 때는 여권을 발급해주더라고요. 말이 여권이지 건강기록부에요. 동물병원과 의사 정보, 광견병 백신 접종 내역 같은 게 적혀 있어요. 이게 정말 강력한 통행권이에요! 비행기 탈 때 사무장님 호출해서 강아지 여권을 보여주면 프리패스에요. 복잡한 서류가 필요 없어요.
Q. 7년 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뽀뽀와 어떤 나라를 가봤나요?
이탈리아를 자주 갔었고, 스위스와 프랑스, 슬로바키아도 갔었어요. 그런데 기억이 다 나지 않아 아쉬워요. 그래서 어떨 땐 뽀뽀가 로보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눈에 카메라가 있고 머리에는 블랙박스가 있어서 저장된 데이터를 함께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Q.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스위스요. 광활한 초원에서 오프리시로 뛰어노는 뽀뽀를 보면 제가 다 힐링이 돼요. 웨스티 특징인 것 같은데 뽀뽀는 잔디밭에서 뒹구는 걸 제일 좋아해요. 풀 냄새를 뭍이고 싶나봐요.
Q.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글쎄요. 아이슬란드처럼 대자연이 있는 나라와 뽀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 가보고 싶어요.
Q. 뽀뽀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나자 마자 얼굴을 핥으면서 막 뽀뽀하는 모습을 보고 직관적으로 떠올린 이름이에요.
Q. 뽀뽀 이름에 외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어때요?
되게 재밌어 해요. 독일말로 ‘포포’가 엉덩이라는 뜻이거든요. ?!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뽀뽀를 더 귀여워하는 것 같아요. 저는 마음에 들어요.

Q.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건가요?
“나는 내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할 거야”라는 뜻인데 독일에서 뽀뽀가 세금을 내고 있다는 표시에요. 1년에 120유로를 내니까, 한 달에 1만 5천원 정도이고, 세금으로 정부는 ‘티어하임’이라는 동물보호소를 운영해요. 이 펜던트를 받고 괜스레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비록 나는 시민이 아니지만 내 개는 시민이라는 당당함! 뽀뽀는 좋겠어요. 저는 맨날 비자 갱신한다고 고생하는데.
Q. 독일의 반려 문화는 어때요?
우리나라에 비해 인프라가 많지는 않지만, 훨씬 자유로워요. 예를 들어서 레스토랑 출입은 기본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동가방도 필요 없어요. 목줄만 메고 있으면 지하철과 시내버스 이용이 가능해요. 기차는 어린이 요금을 내고 태울 수 있어요.
Q. 어린이 요금을 낸다는 게 마치 강아지를 시민으로 대하는 것 같아요.
한국과 독일 두 나라를 모두 경험한 반려인으로서 제 눈에 보이는 건, 우리나라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반반이고, 법적인 터치가 아직까지 많지 않다는 거예요. 그에 비해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확실하게 관리를 해서 오히려 좋아요. 코로나 때 독일은 락다운을 해서 9시 이후로 사유 없이 나가는 게 금지됐어요. 그런데 강아지 산책만은 허용이 됐거든요. 지금도 강아지 산책 안 시키면 범죄에요.
Q. 펫프랜들리한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던 독일만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사냥개 문화 덕분인 것 같아요. 옛날부터 강아지를 데리고 사냥을 하면서 가축보다 동료라는 인식이 강해졌을 거예요. 웨스티도 총에 맞고 떨어진 오리를 물어오는 사냥개였고요.
Q. 뽀뽀에게도 사냥개의 유전자가 남아 있나요?
있죠 있죠! 일단 제일 좋아하는 놀이가 공놀이에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한 번은 베를린에서 호숫가에 갔는데 뽀뽀가 죽은 새를 물어온 적도 있어요.
Q. 뽀뽀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은 뭐예요?
당연히 뽀뽀제과 아닐까요. 하하! 뽀뽀는 일단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는데, 제가 껌 종류를 자주 줘요. 양미리 같은 생선류도 잘 먹고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거의 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니 요리하며 나오는 자투리를 간식으로 주곤 해요. 만약 소고기 무국을 끓이면 삶은 고기를 조금 나눠 주는 식으로요.
Q. 뽀뽀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에요?
뽀뽀가 행복해하는 걸 가만히 바라볼 때요. 저는 뽀뽀에게 고마운 게 참 많아요. 독일 사람만 있는 곳을 가면 이방인으로서 주눅들거나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혹은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 지 모를 때도 있고요. 그럴 때 뽀뽀랑 함께 있으면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와요. 게다가 강아지 산책으로 동네 주민 인증이 되니까 사람들도 저를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요.
Q. 연덕 님과 뽀뽀의 투게더를 정의해주세요.
뽀뽀 여권도 있고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까, 우리는 ‘트래블 투게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