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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날개 달린 것

[PEOPLE] 건축가 이혜인 님과 버드를 만나다

by Eunju2023.08.23

거리를 장악한 요즘 새들은 도통 겁이 없다. 특히 비둘기는 발자국 소리, 심지어 자동차 경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시대에 적응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새에게 긴장감을 주는 건 다름 아닌 도시의 강아지다. 백이면 백, 강아지는 본능적으로 새를 쫓는다.

그런데 버드(?)는 다르다. 산책 중에 새를 발견하면 달려들지 않고 그저 바라본다.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살생을 금하고 도를 닦는 건지. 아무튼 이름값 하는 강아지다.

건축가 이혜인 님은 버드가 새를 쳐다보는 걸 즐기는 것 같다고 추측한다. 착하게 앉아 짹짹- 노래하는 참새를 구경하는 버드를 상상하니 마치 동화 같다. 버드야, 너는 날고 싶은 거니?

Q.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귀가 날개처럼 생긴 강아지 버드(Bird)와 살고 있는 이혜인입니다.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Q. 버드는 혜인 님 인생의 첫 번째 강아지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스리랑카에서 자랐는데, 거기서 가족들과 강아지를 많이 키웠어요. 닥스훈트처럼 작은 아이들부터 코카스파니엘, 셰퍼드 등 다양하게요.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돌보는 건 처음이에요.

Q. 스리랑카는 낯선데, 그곳의 반려문화는 어떤가요?
불교국가인 만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고 소중히 대해요. 그래서 그런지 길가에 들개가 정말 많아요. 동네 사람들이 밥을 잘 챙겨주거든요.

Q. 집 없는 떠돌이 개들 말인가요?
네. 그래서 반려견과 산책하려면 오른손에는 막대기, 왼손에는 돌을 들고 다녀야 했어요. 자꾸 따라와서요. 한번은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개들이 무리를 지어서 막 쫓아오는 거예요. 사람을 물 기세로 달려오니까 무서워서 하루 만에 자전거를 팔아버렸어요.

Q. 스리랑카는 언제 가게 됐어요?
초등학교 5학년에요. 중학교는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는 다시 스리랑카에서 다녔어요. 대학은 한국으로 진학해 실내 건축을 전공했고, 스리랑카로 돌아가 4년 간 일했어요.

Q. 발자취가 흥미진진해요. 첫 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건축 전문가로 일했어요. 개발 원조 사업에 속해서 병원과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Q. 건축의 매력에 눈을 뜬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스리랑카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리조트와 부티크 호텔이 많아요. 유명한 휴양지 몰디브가 바로 옆에 있고요. 그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열대지방의 여유로운 건축 양식에 매료됐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축가는 트로피컬 모더니즘의 대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에요.

Q. 공간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텍스처 플레이요. 예를 들어 같은 검은색이라도 유광으로 칠한 것과 무광으로 칠한 것, 혹은 오돌토돌한 것 등 여러 질감이 한데 모이면 공간의 느낌이 색다르거든요. 각기 다른 소재들이 잘 어우러지면 다양한 컬러를 쓰지 않아도 빛과 그림자만을 이용해서 조화롭게 공간을 채울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별로 달라지는 빛의 양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하는 공간의 유연성도 제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그게 잘 구현된 프로젝트가 제주도에서 했던 '점(店.) 스토어'(사진)에요.





Q.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 검은 기둥. 혜인 님의 아이덴티티가 느껴져요.
점 스토어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클라이언트였어요. 제 작업 스타일을 잘 알고 워낙 좋아하던 친구라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다려줬어요. 그래서 제 마음이 가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었고 그런 덕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프로젝트를 할 때 어떤 걸 중시하나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요. 저는 의뢰인과 되게 밀접하게 일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공간을 기획할 때 의뢰인이 평소에 하는 생각, 사용하는 단어, 놀라는 포인트 등 일상적인 모습에서 힌트를 얻거든요. 그래서 딱히 업무 관련 이야기가 아니어도 쉽게 만나 커피 한 잔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언젠가 한국에 호텔을 직접 만들고 싶어요. 스리랑카 호텔에서 경험했던 감정을 담아서요.

Q. 유기견을 데려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는 파양 경험이 있어요. 가족을 떠나 있으면서 한참 외로웠을 때 멋모르고 비글을 입양했는데 1년을 못 키웠거든요. 당시 옆집에 똑같이 비글을 키우는 분이 계셔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으며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다 자기가 데려다 키우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서 보내게 됐어요. 그 일을 겪은 후 반성하면서 동물 보호 시설로 꾸준히 봉사를 다녔고 자연스럽게 유기견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혼자 반려견을 케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앞선 경험 때문에 버드 입양을 결정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웠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유기견 봉사를 다니면서 떳떳한 반려인이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어요. 입양 신청서에 파양에 대한 이야기를 몽땅 적어서 냈고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솔직하고 싶었어요.

Q. 입양할 때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유기견 입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과 결혼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에요. 실제로 결혼하면서 파양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나봐요. 이렇게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디테일한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강아지 입장에서는 평생 가족을 찾는 일이니까 사적인 걸 물어보는 것도 이해가 돼요.

Q. 버드가 이제 7개월 됐죠? 딱 개춘기일 시기네요.
안 그래도 원래 둥글둥글하던 애가 요새 말을 안 들어요. 하고 싶다는 걸 못하게 하면 갑자기 물고 쌩 도망가기도 하고요. 남들이 봐도 그러는지, 근 2주간은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도 중학교 2학년 같은 표정이라고, 얄밉다고 그러더라고요.

Q. 버드 원래 성격은 어때요?
무던해요. 화내는 경우가 없어요. 샤워할 때도 엄청 얌전하고요. 우비를 입혀도 가만히 있고 뭘 하든 가만히 있어요. 원래 순둥이인 것 같아요. 그런데 방구를 진짜 잘 뀌어요. 방금도 한 두 번 뀐 것 같아요…!

Q. 똥책 잠깐 다녀와야 겠어요. 배변은 실외에서만 하나요?
집에서만 안 싸요. 대신 사무실에서는 싸요.? 회사가 집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게 귀엽고 웃겨요.

Q. 버드가 집에 있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집안에 온기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아요. 두근두근 따뜻하게 살아있는 존재에 기대고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아침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막 일어나 버드랑 인사할 때 진짜 좋아요.

Q. 불편한 점은 없나요?
없을 수 없어요. 직업 특성상 외근도 많고 성격도 외향적이라 밖에 자주 나가 있는 편인데 버드가 온 후로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졌어요. 버드를 집에 혼자 남겨두고 미팅을 하고 있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고, 간혹 귀갓길에 차가 막히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버드보다 제가 더 분리불안이 있어요.

Q. 반려생활을 하면서 공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나요?
반려견과 반려인 모두에게 편한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어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버드가 살기에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해결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동물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양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식물을 키우는 걸 좋아해서 거실에 화분이 많았는데 버드가 오고나서 식물방을 따로 분리했어요.

Q. 많은 반려인들의 꿈이 나만의 반려 공간을 갖는 거더라고요. 혜인 님도 버드와 살 집을 만들 계획이 있나요?
원래 새로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제 뿌리를 내릴 집을 만드는 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버드 덕분에 집을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꿈이 생긴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요새는 지인들에게 언젠가 버드와의 공간을 만들 거라고 신나서 말하고 다니기까지 해요.





Q. 버드랑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같이 오토바이 타는 건데, 한참 연습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부바 가방에 버드를 태우고 운전해요. 언젠가 익숙해져서 버드가 트레이에 쏙 들어가서 딱 앉아 있으면 좋겠어요. 같이 멀리 여행가서 고글을 나눠 쓰고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Q. 버드와의 투게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오래오래 투게더'.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우리의 영원을 염원하며!






後 TALK.
인터뷰를 마치고 버드의 자유로운 뛰뛰를 위하여 '스미스앤버튼'의 '퍼피 2in1' 샴푸와 대나무 섬유로 만든 생분해 물티슈를 선물했어요. 버드가 잔디, 진흙에서 더러워질 걱정 말고 마음껏 새를 구경하길 바라요.


이혜인

스리랑카에서의 경험과 감상을 공간에 녹여
유일무이한 디자인을 전개하는 건축가 이혜인 님은
매력적인 귀를 가진 버드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