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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홍차, 그리고 코기가 함께 한 황혼

[CULTURE]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튜더’를 소개하다

by bean2022.05.06

‘타샤 튜더(Tasha Tudor)’. 이름만 들으면 그녀를 바로 떠올리기 힘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 ‘비밀의 정원’ ‘타샤의 정원’을 본다면 “아, 이 삽화?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며 반가움을 표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타샤튜더’는 일본 여성 감독이 10년간 그의 삶을 영상으로 담은 만년(晩年)의 기록이다.

영화 속 타샤튜더의 동화 같은 삶에 우리는 잔잔하게 빠져들게 된다. 18세기에 지은 집에서 19세기 옷을 입고 사는 타샤는 나이가 무색하게 사랑스럽다.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다.

그는 오래된 옷에 자수를 놓고, 여유롭게 오후 티타임을 즐긴다. 그를 따르는 장난꾸러기 웰시코기들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단조로운 타샤의 일상에 탄성을 높여준다. 만개한 꽃을 따고, 자연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홍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인상 좋은 할머니.

직접 마주하진 않았지만 영화 속 그에게선 진한 흙냄새와 옅은 꽃향기가 스며나고 있었다.

어쩌면 현실이라는 잔혹한 동화

꽃을 한 번이라도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려면 꽤나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흙은 마르지 않았나, 빛을 제대로 들어오는가, 물은 적당량을 줬는가... 쉴 틈이 없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꽤나 험난한 일이다. 그렇게 애정을 듬뿍 머금은 것들은 때깔부터 다르다.

잘 가꿔진 그의 정원을 보고 있으면 찬란한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계절마다 지고 피는 꽃이 다르고 자연이 주는 오색 빛깔 색과 향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타샤 튜더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이 30년이 걸린 일”이라고.

영화 속 타샤의 정원은 그 무엇보다 수수하면서도 화려하다. 30만 평이 넘는 정원을 닮은 따듯한 색채의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그의 삶 또한 이리도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하지만 타샤의 과거는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불운의 연속이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이혼과 남편의 죽음으로 그의 삶의 이면은 어두웠다. 홀로 어린 4남매와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그에게 그림은 삶의 사선에서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잔잔한 다큐에 매료되는 이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힐링이 되는 이유는 세상과 마주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그의 나이든 얼굴 속에 소녀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은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이 새로운 변화에 호응하고 체화하기 때문은 아닐까. 꾸준한 장미 트렌드 연구도 그 중 하나다.

어찌보면 이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뻔할지 모른다. 90세가 넘은 타샤의 일상의 모습과 인터뷰를 교차 편집하며 한 나이든 여성의 인생과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생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 건 그만의 철학과 그를 대변하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의 결핍이자 이상향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사로운 봄에는 사뿐히 걸어가자

타샤는 1980년대의 빈티지한 옷을 입고 나른한 목소리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요. 그래서 놓치는 게 많죠. 사람들이 행복의 비결이 뭐냐고 물어요. 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답하죠. 난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이렇게 앉아서 음미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꽃, 수련, 석양, 구름 자연에 모든 것이 있어요. 인생은 너무 짧아요. 즐겨야죠.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서있는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빠르게 흐르는 시대에 맞춰 발걸음 또한 바빠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한 번도 스스로 하지 못한 질문,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가’. 그저 발 빠르게,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에 홀려 있다 엔딩크레딧 위로 현실 속 내가 오버랩되어 보였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인생은 너무 짧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지 않는다. 나지막이 타샤튜더에게 작은 다짐을 속삭여 본다.

“나도 당신과 같이 주변의 모든 걸 음미하며 살아 보겠다”고.

* 영화, 그 후
1. 가족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원 방문 신청을 받고 있다. 내년 예약이 가능하니 그가 30년 간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을 꼭 한 번 방문해보길 바란다.

2. 시간이 없다면, 굿즈 쇼핑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그의 감성을 사랑한다면 장바구니가 금새 그득해질 것이다.

3. 홈페이지에서 그의 며느리가 관리하고 있는 웰시코기들의 사진과 소식도 확인할 수 있다. 랜선 이모, 이모부가 되어 코기와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 타샤튜더 (2017, Tasha Tudor: A Still Water Story)
감독 : 마츠타니 미츠에
출연 : 타샤 튜더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다큐멘터리
러닝타임 : 104분
플랫폼 :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