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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사랑한 한옥과 고양이
[PEOPLE] 글 쓰는 장보현 님과 세 고양이를 만나다
by Eunju2023.07.19
매일 아침 습관처럼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도 시간 흐르는 줄은 모른 채 “벌써 7월이네”라는 말을 내뱉는다면 계절감을 잊고 산다는 반증이다.
도시인의 삶은 바쁘다. 집과 일터를 반복하며 쳇바퀴를 돌리는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살필 심적 여유는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에서 장보현 작가는 계절이 흐르는 속도를 온전히 느끼며 산다.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여백이 넉넉한 삶이다.
손수 고친 한옥에서 세 마리 고양이와 사는 그를 찾았다. 한여름, 이마를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문을 두드리니 ‘야옹’하는 고양이의 인사가 우리를 미리 반겼다.
Q. 반갑습니다. 작가님, 자기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장보현이라고 합니다. 한옥에서 사진을 찍는 남편과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Q. 한옥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항상 궁금했어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워요. (?) 많이들 한옥의 단점으로 꼽는 점이지만, 저는 이 생활에 적응이 되었는지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좋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옥상 정원에서 철에 맞는 풀이 자라고 고양이와 새가 찾아와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금이 참 자연스럽고 행복해요.
Q. 에세이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를 읽어보았어요. 절기를 기준으로 계절 음식과 풀어낸 보현 님의 일상 묘사가 참 따뜻했습니다.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글쎄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짝사랑이었지요. 왜냐하면 지금은 쓰는 사람의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생계나 경제 활동처럼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만족하며 현재를 보내고 있어요.
Q. 현재를 담보로 미래만 바라보면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현 님의 철학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위로 같아요.
인간은 항상 뭔가를 이루고자 해요. 그래서 더욱 자기 객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열심히 힘을 쓴 다음 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망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내 능력 밖으로 애쓰다 보면 언젠가 에너지가 소진되어 탈진할지도 몰라요.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인 것 같아요.
Q. 보현 님은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나요?
이번에 탈고한 소설은 고양이가 모티브에요. 고양이들은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하잖아요. 그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할 일 없는 젊은 아이가 고양이를 만난 후로 누워 있다 점점,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야기에요.
Q. 기대돼요. 빨리 읽어 보고 싶은데요. 막내 금동이는 사진 찍는 데에 꽤나 적극적이에요.
그러게요. 오늘 인터뷰한다고 고양이들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었더니 평소보다 편하게 다가오네요.
Q.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옥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게 남편 로망이었어요. 2012년 봄에 통인동 한옥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어느 날 지인이 영국 유학을 가야 해서 키우던 고양이를 분양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타이밍 좋게 저희가 데려왔죠. 이름은 ‘미셸’이었어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름에서 따온 거래요. 부르던 이름이 익숙할 것이라 생각해서 우리도 미셸이라 부르고 있어요.
Q. 미셸은 걸음걸이만 봐도 근엄해 보여요. 성격은 어때요?
강한 고양이에게 강하고 약한 고양이에게 약한, 인왕산 호랑이의 품성을 지니고 있어요. 집에 개방된 공간이 많아서 동네 고양이들이 자주 기웃거리거든요. 미셸은 옥상, 골목, 뒤뜰을 하루도 빠짐없이 살피면서 집을 지켜요.
Q. 둘째 꼬망이는 어떻게 만났나요?
미셸은 새벽 4시만 되면 우리를 깨웠어요. 그 모습이 무료해 보여서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데려오자 싶었죠. 우연히 동호회 사이트에서 고양이 분양 글을 보았고 정릉에서 6개월 갓 지난 작은 샴고양이를 데려왔어요. 원래 이름은 ‘토리’였는데, 조그마한 고양이라 ‘꼬망’이라 부르게 됐어요.
Q. 미셸은 꼬망과 잘 지냈나요?
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줬죠. 식구가 생긴 게 내심 행복했나 봐요. 덕분에 꼬망도 반나절 만에 한옥 생활에 적응했어요.

Q. 꼬망이 성격은 어때요?
예민하지만 애교가 많아서 사랑스러워요. 말이 많고 한 사람만 따르는 게 전형적인 샴고양이의 기질이래요. 그리고 확실히 고향 태국냥이의 DNA가 있어서 그런지 여름만 되면 하루 종일 마당에 있어요. 템테이션 간식을 좋아하고 전용 물컵에 따라 주면 손으로 물을 찍어서 마셔요.
Q. 아까 저희를 마당에서 반겨준 것도 꼬망이었어요. 세 마리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사람이랑 비슷해요. 겨울은 추우니까 움츠러들었다가 봄이 되면 몸이 깨어나고 활동량이 많아져요.
Q. 금동이는 어떻게 만났어요?
2018년 봄 무렵, 지붕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어요. 올라가보니까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 삼순이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육아 중이더라고요. 그날부로 열심히 옥상을 오르내리며 밥 셔틀을 했어요. 여름이 다가오자 삼순은 새끼들을 독립시키고 떠났고 남매 고양이들은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나타나 밥을 먹고 갔어요. 두 마리 중 유독 사람 손을 타던 고양이가 금동이었어요.
Q. 이미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금동이까지 집에 들이기 부담되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래서 처음에는 구청에 연락해서 중성화 수술만 시켰어요. 그런데 애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필 겨울이 찾아왔고… 걱정을 이기지 못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살게 됐어요.
Q. 금동에게 간택 당했네요. 금동이는 어떤 고양이에요?
밥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으며 세상 무해한 존재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표정이 매력이에요. 그리고 목청이 좋아 노래를 잘 불러요. 새벽에 금동이 혼자 “냥, 냥~”하면서 흥얼거리거든요? 은근히 멜로디가 있고 박자도 얼추 맞아요.
Q. 노래 부르는 고양이라니… 너무 사랑스러워요.
똑똑해요. 큰형 미셸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다 따라해요. 미셸이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와서 앉으려고 하고, 미셸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학습해요. 몸집도 비슷하게 푸짐해졌고… 고양이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명석한 만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옆집 아이 ‘정우’가 금동과 동갑인데 맨날 유치원 끝나면 우리집에 와요. 금동이랑 놀려고요.
Q. 미셸은 12살 나이가 무색하게 털에 윤기가 흐르고 건강해요. 비결이 뭘까요?
루틴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미셸은 새벽 4시에 기상하고 오후 4시에 잠을 자는 생활 습관을 갖고 있어요. 아침 일찍 옥상에 올라가 새벽동안 옥상을 거쳐간 길고양이들의 흔적을 정찰하고 한참 자기만의 시간을 갖다가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요.
Q. 다른 고양이들도 그렇게 루틴대로 생활하나요?
미셸만큼 정확한 루틴은 없어요. 그저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편이죠. 오히려 제가 미셸을 보면서 규칙적인 삶에 대해 고찰하게 됐어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을 아세요?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 9시가 되면 잠이 드는 건데, 이런 성실함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저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저의 삶을 꾸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Q. 보현 님의 루틴은 무엇인가요?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말기. 예를 들면 커피는 열 한시 이후로는 마시지 않는 것 등이요.
Q. 고양이와 살게 되면서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원래 집을 좋아하는 편이라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집을 오래 비우지 못하게 된 건 확실해요. 며칠 나갔다 오면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털이 까칠까칠해져 있어요. 최근에 2박 3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꼬망이가 식음을 전폐했더라고요. 몸무게가 500g이나 빠진 걸 보고 더 이상 멀리 못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걸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Q. 고양이들이 사고를 친 적은 없나요?
한번은 미셸이 옥상에서 놀다가 뾰족한 펜스에 배를 크게 다쳤어요. 다행히 뱃살 지방이 많아서 살았죠. 붕대를 칭칭 감고 밥도 잘 안 먹어서 많이 걱정했어요. 다치고 나서 자꾸 어디로 숨으려고 하더라고요.
Q. 고양이는 다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숨으려 한대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7년 전 옥상에 놀러 오던 턱시도 고양이가 있었어요. 턱에 수염이 있어서 ‘흥국’이라고 불렀는데, 우리집 고양이들이랑 놀고 싶어 하는 아기였어요. 어느 날 창고방에 들어갔는데 미셸이 보금자리로 사용하던 숨숨집에 흥국이가 잠든 것처럼 숨을 거뒀더라고요. 정말 슬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집을 안식처라고 생각했나 봐요.

Q. 아이들과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침대에 다 같이 누워 있을 때요. 남편까지 다섯이서 누워 있으면 침대가 퀸 사이즈여도 꽉 차요. 각자 자기 자리를 잡아서 뽀짝하게 누워 있을 때, 참 행복해요.
Q.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남편은 다 같이 가족 사진 찍는 게 소원이래요. 그리고 저는 요새 등산에 푹 빠져서… 고양이들과 산을 오르는 게 막연한 꿈이에요. 산을 오르다 보면 가끔 고양이가 있거든요? 바위에 앉아서 산신령처럼 있는 고양이들 모습이 정말 좋아보여요.
Q. 미셸, 꼬망, 금동과 보현 님의 투게더를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젊은 날의 초상 투게더” 저의 30대를 온전히 함께 했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제 삶의 빈 공간을 많이 채워줬어요. 그래서 10년을 돌이켜보면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