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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좋아, 고양이 좋아

[PEOPLE] 메브스튜디오의 김수지 님을 만나다

by Eunju2023.07.12

11년 전, 미대생 김수지 님은 작업에 치이고 시간에 쫓겨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1L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얼떨결에 반려묘 '쌀'과 살게 되면서 수지 님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사랑하는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서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저분했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술과 커피를 줄였다. 그리고 육고기를 끊었다. 점차 살이 붙고 혈색이 좋아졌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 차근차근 노력하는 삶은 고양이가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지금 수지 님은 쌀밥을 짓기 위해 뜸을 들이듯, 느리지만 건강하게 산다. 베틀을 돌리는 그의 발 밑에서 고양이 쌀은 천천히 하품을 하며 집사의 일이 어서 끝나길 기다린다.

Q. 작가님,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텍스타일 스튜디오 ‘메브’의 김수지입니다. 11살 반려묘 쌀과 함께 살고 있어요. 저의 공간에 오신 걸 환영해요.

Q. 작업실이 무척 메브스러워요.?? 메브는 어떤 아이템을 만드나요?
친환경 재료로 세상에 단 하나인 패브릭을 만들어요. 그걸로 화분 옷과 티코스터, 가방 같이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요.

Q. 브랜드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섬유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찍이 패션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빠르고 냉정하게 흘러가는 산업의 성격이 제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욕심이 없고 승부욕도 적고, 천천히 움직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빨리 만들고 빨리 파는 일 대신 느리게 만들고 사람들이 오래 쓰는, 가치있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Q. 자투리 천과 버려진 털실, 재활용품으로 물건을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이죠. ‘메브’라는 이름은 불어로 ‘바다와 숲’이라는 뜻이고요. 사람들이 옷과 물건을 쉽게 사고 금세 버리는 걸 보면서 애초부터 버려졌거나 남은 재료로 물건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이런 표현이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모든 물건은 예비 쓰레기(?)라고 비유할 수 있으니까요. 요새는 비닐봉지를 직조 틀에 끼워 색다른 느낌의 패턴을 짜고 있어요.

Q. 모든 화분 옷 디자인이 다르다는 게 특별하게 다가와요. 수많은 아이템 중에 개인적으로 포트 스커트(Pot Skirt) 라인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탄생했나요?
사실 그건 실패작이었어요. 남은 직물로 화분 옷을 만들다가 실이 자꾸만 풀렸는데 미완성 상태로도 은근히 귀여운 거예요. 그래서 친구한테 사진을 보내주면서 어떠냐고, 과하냐고 물어봤어요. 그걸 본 친구가 “치마 입었네”라고 말한 게 귀여워서 그 아이템의 이름은 포트 스커트가 됐죠. 그러고 보니 저는 친구들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편인가 봐요. 고양이 이름도 친구들이 제가 쌀밥 좋아한다면서 이라 지어줬거든요. 특히 예술 계통에 몸 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는 게 좋아요.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





Q. 앞으로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최근에는 제 작업실에서 비정기적으로 팝업을 열고 있어요. 공간이 혼자 쓰기에는 조금 넓다 보니까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저와 가치관이 비슷한 브랜드나 작가님을 작업실에서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첫 번째 팝업은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우고(WUGO)’와 함께 했고 두 번째로는 퀼팅 작업을 하는 ‘P.O.C piecework’ 작가님과 함께 했어요. 저는 작품을 만드는 걸 넘어 사람들과 가치 있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비닐봉지를 천으로 만들어보는 클래스도 하고 팝업도 열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저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는 이벤트를 하고 싶어요.

Q. 쌀은 언제 만났어요?
11년 전, 대학교 3학년일 적에 만났어요. 그 때는 현실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조금 부담이었어요. 미대 공부를 하느라 집에 잘 안 붙어 있기도 했고요. 대신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 대리만족 했는데요. 어느 날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마음이 동해 냉큼 데려오게 됐어요.

Q. 쌀에게 한 눈에 반한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뭔가 홀린 것처럼 데려왔거든요. 쌀이 대학가에서 엄청 많은 주인을 거쳤어요. 3개월 때 만났는데 그때 제가 무려 다섯 번째 주인이었어요.

Q. 세상에. 이 집 저 집 전전하면서 쌀이 너무 힘들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원룸에서 키우려고 데려왔다가 막상 같이 살아보니 고양이의 말썽을 감당하기 어려웠던거죠. 경제적으로 어리기도 했을 테고요. 그래서 친구에게 주고, 주고, 주는 게 반복됐나 봐요. 쌀이만 안쓰럽죠. 그래도 낯선 곳에 가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사람을 겁내거나 낯을 가리지 않아요.

Q. 쌀의 성격은 어때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게 저랑 닮았어요. 코로나가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저는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신이 나서 둘이 막 들이대요. 미팅이 있으면 항상 업무이야기로 시작해서 쌀이 팬미팅으로 끝나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둘이 꼭 침대에 누워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돼요. 그리고 자기가 사람인 것처럼 말이 정말 많은 고영희입니다.

Q. 쌀이가 싫어하는 건 뭔가요?
혼자 있는 걸 정말 힘들어해요. 그래서 저는 화장실도 문 열어놓고 사용해요. 문을 닫는 순간 그 앞에서 울고 불고 난리가 나요. 파양을 여러 번 겪었다 보니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에 대한 집착이 알게 모르게 있어요.




Q. 쌀은 수지 님이 처음 키워보는 고양이잖아요, 함께 살아보니까 어떤가요?
얼떨결에 쌀을 데려온 후로 삶의 여러 부분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대학교 3학년, 맨날 작업만 하면서 술과 커피 잔뜩 먹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끼우던 때였어요. 쌀을 데려오고 나서 제가 건강을 챙기더라고요. 제가 건강해야 고양이를 챙길 수 있으니까요. 저는 쌀을 보면서 쌀에게 이것저것 해줘야겠다는 책임감보다는 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약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처럼요.

Q. 수지 님과 쌀의 일상은 어떻게 돼요?
단순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쌀이 밥과 물을 챙겨준 후 식물을 돌봐요. 아침을 먹고 작업을 하다 일이 끝나면 한강에 가서 조깅하고 와요. 저녁 먹고 쌀이 약 먹이고 잡니다. 친구들이 은퇴한 할머니 같다고 놀려요.

Q. 11년이라는 세월동안 쌀이는 수지 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을 거예요. 그래서 더욱 쌀이 노묘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저도 딱히 쌀이가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요, 최근에 친구가 키우는 1살 청년 고양이를 만났는데 진짜 젊더라고요. 표정에 장난기가 있고 눈빛에… 총기가 어렸어요. 쌀이는 모든 걸 달관한 그런 눈빛인데 말이죠. 그 순간 쌀이 나이가 조금 실감났어요.

Q. 쌀은 집에서 어떤 구석을 가장 좋아하나요?
고양이는 일정한 루틴이 있는 동물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장소도 주기적으로 바뀌어요. 요새 쌀의 루틴은 작은방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거예요. 제가 방에 있으면 쌀이도 그 방으로 따라 들어와 어디 박스 같은 곳에 들어가 있어요. 방마다 창틀에 숨숨집이나 박스가 있거든요.

Q. 쌀이는 엄마 따라 다니느라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아요.
근데 개나 고양이는 원래 지루하다는 감정을 모른다고 해요. 뇌의 어떤 기관이 사람하고 다르게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모르고 매일매일을 다시 새롭게 산대요. 그래서 고양이가 매일 똑 같은 곳만 보고 있으면 지루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다분히 사람 관점이에요. 이 사실이 진짜라면 정말 안심될 것 같기는 해요.

Q. 쌀이가 수지 님 작업을 많이 방해할 것 같은데요.
맞아요. 가끔 바쁘면 자야 할 시간에 안 자고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해요. 그렇게 계속 일하고 있으면 쌀이 옆에 와서 자러 가자고 발가락을 깨물어요. 화내는 거죠. 그럼 저는 청소기를 발 밑에 두고 일해요. 쌀은 청소기를 무서워하거든요. 일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면 쌀이 옆에 와서 골골소리를 내면서 애교를 부려요. 그때 엄청 미안해요. 이렇게 사랑이 많은 애한테 무섭게 청소기로 겁주고. 그래서 ‘얘는 내가 뭐가 좋다고 이럴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Q. 쌀이의 매력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뒷발 뒷편 아래쪽에 하트 모양 무늬가 있어요. 쌀이 누워야만 보여서 사람들은 잘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 무늬가 최고로 귀여워요. 쌀이 몸에 하트가 진짜 많아요. 제가 쌀이 하트를 본떠 제 몸에 새기기도 했어요.

Q. 쌀이와 함께 하며 제일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해주세요.
저나 쌀이나 행복을 헤프게 느끼는 타입이라 곧잘 즐거워 해요. 그냥 날씨 좋을 때 작업하다가 창문을 넘어 기분 좋은 바람이 솨아 들어올 때가 있어요. 쌀이는 낮잠을 자고 있고 저는 잠시 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오늘 날씨 좋다”라고 말해요. 그런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순간이 저는 행복해요. 그리고 최근에 팝업을 찾아오신 손님께서 쌀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거예요. 그 말이 되게 기뻤어요.

Q.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쌀이 죽음을 앞둔 순간이 온다면, 푸른 바다나 넓은 들판 같이 넓은 자연에 데려가 주고 싶어요. 썩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죽기 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쌀이는 내내 도심 속에 살았으니까요.

Q. 쌀과 수지 님의 투게더를 정의한다면요?
“러브 투게더” 제가 쌀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엄마가 사랑한다고, 쉴 새 없이 속삭여요.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메브를 만들었으니까... 결국 제 삶의 원동력은 사랑인 것 같아요.


김수지

친환경 소재로 지속가능한 수공예품을 만드는
메브 스튜디오의 김수지 님은 반려묘 쌀과
식물을 돌보며 규칙적인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