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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튼튼하게 키울고양
[PEOPLE] 장수연구소 대표 이상백 님을 만나다
by Eunju2023.06.28
한남동 골목 어귀에 숨어 있는 작은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간을 가득 메운 피톤치드 향이 은은하다. 조각조각 잘려 있는 나무 파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리라.
포블스가 찾은 장수연구소는 목공 전문가가 유기그릇으로 만드는 반려동물 식기 브랜드. 당연히 장수연구소의 대표는 백발성성한 장인일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상백 님은 묵직한 라이더 재킷을 걸치고 반짝반짝 광이 나는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 멋진 라이더였다. 게다가 고양이를 사랑해서 반려동물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굉장한 반전 매력이었다.
반려동물의 생활에 있어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백 님은 아이들의 입이 닿는 그릇에 주목했다. 진심을 담아 연구한 식기에는 고양이의 장수를 염원하는 집사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해주세요.
반갑습니다. 장수연구소 대표 이상백입니다. 브리티시 먼치킨 ‘쿠키’와 뱅갈 먼치킨 ‘제리’의 집사에요.
Q. 여기 공방에서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나요?
식기를 올려 두는 트레이를 만들어요. 큰 작업은 일산 작업실에서 하고 한남동 공방에서는 원목 가공과 조립부터 오일마감까지 수작업이 필요한 공정들을 해요.
Q. 목공은 취미였나요?
네. 옛날부터 뭐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저만의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거든요. 그래서 물건을 사면 커스텀하는 게 취미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목공을 접했는데 푹 빠져버렸죠. 색감도 무늬도 단 하나뿐이라는 원목의 특징이 정말 매력적이었거든요. 나무는 손때가 타고 햇빛을 받으면 부드럽게 에이징이 되는데, 그렇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보는 게 정말 좋아요.
Q. 장수연구소 트레이 제품은 모두 월넛을 사용했는데, 그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월넛이 가구 소재 중에서 제일 좋은 나무거든요. 결도 남다르고 색감도 고급스럽죠. 오일만 발라도 예뻐요. 월넛 컬러를 내는 인조 마감재가 따로 있을 정도예요.
Q. 어~ 오일 작업을 맨손으로 해도 괜찮아요?
천연 오일라서 손에 닿아도 문제없어요. 반려동물이 식사하면서 트레이를 핥을 수 있으니까 안전을 위해 가공과 마감재를 많이 신경써요. 오일 도포하는 과정이 참 까다로운데요. 한 번 바르고 24시간 동안 말리는 걸 세 번 반복해야 해요.
Q. 시중에 반려동물 밥그릇은 흔한데, 전용 트레이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유기그릇만 만들어서 쓸 생각이었는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예쁜 트레이에 올려놓으면 그릇이 더 빛나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을 것 같아 만들게 됐어요. 한 번쯤 더 눈이 가고, 그렇지만 튀지는 않는 디자인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전통적인 모양으로 만들었고요.

Q. ‘정수반’ ‘정반상’의 디자인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해요.
저는 바이크를 타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해요. 사찰이나 인적이 드문 숲에 주로 가는데, 조용한 곳에 앉아 사색하다 문득, 우물의 이미지를 트레이에 입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른 새벽에 물안개가 지그시 피어 오르는 숲 속에서 우물의 실루엣만 어스름히 보이는 거예요. 아침에 처음으로 길어 올린 물처럼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Q. ‘라일락’은 어떤 이야기가 담긴 제품인가요?
정수반과 정반상을 아침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면, 라일락은 한밤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경복궁의 경회루를 좋아하는데요. 밤에 경회루를 본 적이 있나요? 야간 개장하면 경회루에 노랗게 호롱불을 밝힌 것처럼 조명을 킨 걸 볼 수 있어요. 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서 라일락 트레이를 디자인했어요.
Q. 반려동물용 유기그릇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쿠키와 제리가 물을 잘 안 먹어요. 그러다 보니까 물그릇에 털이 빠져서 물이 쉽게 오염되고, 상온에 물을 두면 또 금세 변질돼요. 정수기를 여러 개 바꿔가면서 써봤는데 3시간이 채 안 지나서 더러워지더라고요. 손을 넣어서 그릇을 만져보면 미끌미끌하고요. 물때라고 하는데 그게 세균이거든요. 적어도 4시간에 한 번씩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그러다 사람이 사용하는 놋그릇을 보고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유기에 살균 효과가 있으니까 이걸 물그릇으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죠.
Q. 놋그릇으로 바꾼 후 고양이들의 물먹는 습관이 달라졌나요?
네. 시원하고 물맛이 좋은지 잘 먹어요. 쿠키는 물에 예민해서 마음에 안 들면 밀어버리거든요. 적어도 10개는 깨뜨렸을 거예요. 그런데 유기그릇은 한 번도 엎은 적이 없어요. 특유의 쇠 냄새가 살짝 나지만 거부감은 없어요. 특히 턱드름이 안 생겨요!
Q. 사기그릇 대신 유기그릇이 특별히 좋은 이유가 있나요?
FDA 승인을 받은 안전한 유약보다 저렴한 화학 유약을 발라 구운 그릇이 시중에 많기도 하고, 생활 기스나 크랙의 틈에 세균이 증식해 아토피 같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해요. 사람한테는 무방하지만 반려동물 몸에는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Q. 고양이는 어떻게 만났나요?
와이프가 길냥이들 밥 챙겨주고 다닐 정도로 워낙 좋아했어요.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면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으니 선뜻 집에 들이지 못했죠.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아픈 고양이가 어딘가로 보내질 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끝에 집으로 데려와서 쿠키라는 이름을 지어 줬어요.
Q. 건강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 입양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금전적인 건 둘째 치고 마음 고생이 심했거든요. 여러 병원을 돌아다녀도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아서 와이프가 공부를 많이 했어요. 무려 3개월만에 쿠키의 면역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Q. 정확한 병명은 뭐였나요?
‘호산구성육아종’이었어요. 알러지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이 붓고 최악의 상황에는 입안에 천공이 생기는 병이에요. 그러다 내장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면역력이 약해서 생기는 거래요. 사람으로 치면 아토피랑 비슷해요. 다만 사람은 면역력이 동물보다 훨씬 높아서 가렵고 불편한 정도지만 고양이한테는 치명적이에요.
Q.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관리가 필요했나요?
일단 알러지 검사를 해서 몸에 안 맞는 재료가 들어간 사료 급여를 멈췄더니 차차 좋아졌어요. 그렇게 알러지는 많이 좋아졌는데 영양균형을 맞춰줘야 해서, 와이프가 공부해서 필요한 영양제를 직접 조제해 먹이고 있어요. 캡슐 기계도 사서 적당량의 영양제 가루를 알약으로 만들어 급여하곤 해요.
Q. 정말 대단하네요. 병원 주치의 선생님도 깜짝 놀라겠어요.
논문까지 찾아보면서 공부했어요. 무엇보다 꾸준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먹는 물에 신경써요. 고양이는 물을 잘 안 먹어서 방광에 염증이 생길 위험이 높거든요. 한번 방광 건강이 안 좋아지면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몽땅 무너져서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어요.
Q. 둘째 제리는 어떻게 만났어요?
첫째를 데려온 지 일 년 정도 후에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를 저희가 데려왔어요. 뱅갈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활동량이 많아요. 캣타워를 점프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봉을 타고 올라간다니까요. 어느 날은 벽을 타는 제리를 쿠키가 넋 놓고 쳐다보더라고요.
Q. 다리가 짧은데 높은 곳에도 잘 올라가나봐요?
처음에 먼치킨을 키울 땐 저도 다리가 짧아서 느리고 높이 못 올라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단지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가 낮을 뿐이지, 웬만한 고양이보다 달리기도 빠르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정말 잘 해요. 캣타워도 잘 타고요.
Q. 집에 캣타워가 5개나 있는데, 만족스러운 브랜드 하나 추천해주세요.
그린웨일 캣타워 잘 쓰고 있어요. 아이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낮은 높이로 주문제작 했어요. 그리고 이곳 저곳 커튼과 해먹을 설치해서 애들이 숨어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요. 기본 뼈대에 원하는 대로 커스텀을 해줘서 정말 잘 사용하고 있어요.
Q. 고양이를 키운 후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나요?
솔직히 불편한 게 이만 저만이 아니죠. 여기저기 털이 굴러다니고, 제일 힘든 건 잠을 많이 설치는 거예요. 밤에 자고 있으면 장난감을 제 옆에 퉤 뱉어 놓고 야옹~하고 울어요. 비몽사몽 장난감을 흔들고 있으면 꿈뻑꿈뻑 졸고 있어요. 자나 싶어서 다시 누우면 또 울어요. 계속 장난감 흔들어 달라고요.
Q. 잠을 설쳐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훨씬 행복해진 것 같아요.
맞아요. 다행히 와이프와 제 성향이 집돌이, 집순이라서 아이들과 잘 맞아요. 외출해서도 빨리 집에 돌아오는 편이고요. 그리고 한번씩 답답하면 쿠키와 제리를 유모차에 태우고 잠깐밖에 나갔다 오기도 해요.
Q. 아이들과 산책도 즐기시는군요?
가끔요. 사람 없는 데로만 가고 땅에는 절대 안 내려놔요. 사실 저도 고양이 산책에 반대하는 편이거든요. 왜냐면 하네스를 하고 산책하는 고양이들은 꼬리를 세우고 자신있게 걷는 애들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고양이는 영역동물이잖아요. 강아지랑 다르게 집을 벗어나면 보호자와 있어도 공격 당할 수 있다고 느끼니까 본능적으로 불편하겠죠.
Q. 쿠키와 제리와 간단하게 외출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차가 안전하다는 걸 어렸을 때 인지하도록 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병원에 수월하게 데려가기 위해서는 차에 익숙해지면 좋거든요. 애들이 좋아하는 쿠션 같은 걸 차에 갖다 놓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줬더니 쿠키와 제리는 차 안에서 활발하고 편하게 돌아다녀요. 차를 잘 타니까 잠깐 근처 공원에도 가게 되고, 서서히 바깥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유모차를 타고 잠깐씩 산책을 하게 된 거예요.
Q. 고양이들과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떴는데 애들이 옆에 와 있을 때 되게 기분 좋아요. 그리고 첫째 쿠키는 빗질을 너무 좋아해서 “아빠, 나 너무 좋아,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봐요. 그러다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떨어지거나 말거나 몸을 막 뒤집어버려요. 그때 제가 딱 잡아주는데, 쿠키가 저를 백퍼센트 신뢰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해요.
Q. 상백 님과 고양이들의 투게더를 정의한다면요?
‘수면부족 투게더’요. 고양이들은 수면이 충분하지만… 집사들이 늘 부족해요. 제가 나가서 일하는 시간에 얘들은 잠을 자지만, 저는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가면 고양이들은 새 몸이 돼 있고. 그럼에도 이렇게 함께 하는 지금이 참 즐거워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