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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사는 그집 - 010

[니사집] 이현혜님과 베리, 솜의 집을 엿보다

by Eunju2023.06.19



풍수지리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는다.

이현혜 집사의 첫째 고양이 베리는 이전 집에서 살 적에 원인 모를 특발성 발작으로 수 개월간 아팠다. MRI, CT, 뇌척수액 검사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병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베리의 발작이 감쪽같이 멈췄다. 모두를 괴롭혔던 기억은 서서히 옅어졌고 그렇게 5년이 무탈히 지나갔다.

고양이의 병을 낫게 한 게 꼭 집인 것 같아서, 집사에게 집은 더더욱 소중하다.

“저에게 집은 방공호에요. 저와 저희 고양이들을 지켜주는 곳이죠.”

묘(猫)한 입주 이야기



Q. 집사님이 모시고 있는 고양님들을 소개해주세요.
베리와 솜이 두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어요. 둘 다 스트릿 출신이에요. 첫째 베리는 올해 12살이 됐는데, 초록색 눈에 까만색 무늬가 아주 매력적인 반 고등어예요. 첫눈에 반해서 데려왔을 만큼 어릴 때부터 잘생겨서 얼빠인 제가 매일 외모를 감탄하며 함께 하고 있습니다. 먹는 베리 아니고 VERY 잘생기고 VERY 착하고 VERY 귀엽다는 뜻이에요. 곧 5살이 되는 둘째 솜이는 고롱고롱 안겨 부비며 애정을 보이다가도 느닷없이 입술이고 팔이고 물어버리는 단짠단짠 고양이입니다

Q. 두 마리 나이차가 꽤 있네요!
다들 첫째가 노묘인데 적절치 않다고 반대하는 걸 '7살이 무슨 노묘냐!'라고 우겨서 입양했는데 결론은 잘 데려왔다고 생각해요. 솜이가 온 첫날부터 베리가 너무 신나서 잠도 안 자고 깡총깡총 뛰어다녔거든요. 솜이의 미친 아깽이시절, 베리는 화 한번 내지 않고 솜이를 다 키웠어요. 지금은 가끔 둘이 박 터지게 싸우기도 하는데, 졸리거나 추울 때 베리 품을 파고 드는 솜이를 보면 넘 행복해요. 서로 그루밍을 해주는 거 보면 너무 예쁘고 질투가 나서 가끔 저에게도 고양이 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Q. 고양이로 인해 생활의 모습이 크게 변화했나요?
그렇죠. 우선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어요. ?‍♀️ 샤워할 때도 볼일을 볼 때도요. 제가 문을 닫는 순간 울고불고 난리가 나기 때문에 차라리 문을 열고 자연인처럼 내려놓고 사는 게 마음 편하더라고요. 제가 볼일을 볼 때면 둘째 고양이가 들어와서 '날 쓰다듬어!' '날 안아!' '나 좀 봐!!!' 해서 볼일 보는 시간이 두배는 더 걸리는데요. 최근에는 첫째 고양이까지 합세해 변기에 앉은 제 앞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터라 볼일보는 시간이 아주 즐겁습니다.

Q. 그럼에도 집사라서 좋은 점은요?
위로가 된다는 것. 고양이들만큼 저도 고양이들을 많이 의지하거든요. 언젠가 새벽에 악몽을 꾸고 화들짝 일어났는데 심장이 너무 뛰더라고요. 괜히 방안 공기도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그런데 제 옆에 베개에서 베리와 솜이가 엉켜 자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안심이 됐어요.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 한숨을 크게 쉬고 저도 베리 엉덩이에 이마를 붙이고 누웠는데, 그 온기가 너무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거예요. 한동안 불면에 시달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옆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들의 꼬리나 발을 손에 쥐고 잠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고작 손끝, 이마 끝만 닿았을 뿐인데 몸 전체가 따스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마음의 온기가 통해서겠죠.

집사의 공간 철학

Q. 선호하는 인테리어 스타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지독한 집순이라 차분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화이트와 베이지 계열 외에는 색상을 많이 쓰지 않고 작은 소품들과 식물들로 내추럴한 무드를 냅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유럽 무드에 꽂혔는데, 리모델링은 현실적으로 힘들어 비슷한 느낌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요즘에는 블랙과 빈티지에 관심이 가요. 좋아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장되고 있어서 명확하게 선호하는 스타일은 없지만 몇 년이 지나면 취향이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인테리어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따지는 건 이 집과 잘 어울리는지 분위기와 디자인을 고려해요.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거라면 갖고 싶어도 꾹 참아요. 그리고 가능하면 유행하는 걸 무작정 들이는 일은 지양하고 있어요. 이미 초창기에 많이 사고 버려 봤거든요. 그 다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실용성인데, 대부분 고양이와 연결이 돼요. 고양이 털이 잘 제거되는 제품인가, 고양이들이 토를 하면 잘 닦이는 재질인가, 고양이에게 위험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들이요.

Q. 한 공간에서 고양이와 잘 지내는 집사님만의 꿀팁을 알려주세요.
저는 헌신적으로 고양이를 케어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뭘 해주는 건 없어요. 다만 고양이들이 위험해질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게 치워 두는 편이에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입에 잘 넣는 솜이 때문에 택배박스나 비닐은 바로바로 분리해서 베란다로 치우고, 장난감들도 놀이시간이 아닐 땐 다 다른 방으로 정돈해요. 저는 실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다 사용하고 나면 바로 치우고 청소기도 한번 돌리는 편이에요. 제가 한눈 팔더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최고의 예방인 것 같아요.

니가 사는 그집

01 LIVING ROOM

베이지톤 가구들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 물씬 나는 거실. 자칫 허전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채운 벽장식은 집사가 손수 만든 소품이다. 큰 캔버스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웨인스코팅을 둘러 토끼모양 코트랙을 달아 직접 만들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집사는 잠자는 시간 외의 하루 전부를 거실에서 보낸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쁠 때 베리와 솜은 낮잠을 즐기거나 베란다로 나가 햇볕을 쬐고 가끔 기지개를 켜며 안아 달라고 조른다. 그러다 해질녘이 되면 거실은 놀이터가 된다.

① 한샘 / 눕 데일리 패브릭 모듈 소파 / 193,000원
② 벽장식 / 핸드메이드
③ 스위캣 / 폴앤폴 알루미늄 캣폴 / 334,000원
④ 까사리움 / 블라인드 인테리어 가벽 / 99,000원

02 BEDROOM

집사의 침실에는 하얀 침구와 분홍색 테이블보, 페르시안 패턴의 러그처럼 각기 상반되는 매력의 패브릭이 어우러져 있다. 혼란해 보일 지 모르는 조합임에도,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 든다. 발랄한 색감의 뷰로데스크를 들이니 정돈된 느낌의 빈티지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침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벽에 붙어 있는 로맨틱한 토끼 오브제다. 사실 집안 곳곳에 알게 모르게 토끼 모양 소품들이 숨어 있다. 토끼띠인 집사의 소소한 취미는 토끼가 떠오르는 소품을 모으는 거라고 한다!

① 코알라 / 베이직 매트리스 / 859,000원
② 두잉굿즈 / 애니멀 월행잉 토끼 / 15,000원
③ 뽐므(@kimpomme1224) / 스트라이프 테이블보
④ 마켓비 / Danci 안락의자 / 266,000원
⑤ 한일카페트 / 컴펠로 빈티지 페르시안 러그 / 95,800원
⑥ 매스티지데코 / 뷰로데스크 수납장 / 465,000원

03 HOBBY

침실 한 켠에는 집사가 취미로 만든 티코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작년, 갑작스러운 퇴사 후 암울한 나날을 지내던 집사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위빙’을 시작했다. 버리려고 치워 둔 캔버스를 찾아 천을 뜯어내고 무두못을 꺼내 직접 직조틀을 만들었다.

당시 만든 티코스터는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흉내 내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판매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 묘한 성장감과 함께 울적한 심정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언젠가 베리와 솜이를 닮은 작품이 탄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양이들은 집사의 전부이고 사랑이니. 집사는 앞으로 고양이들을 관찰하며 어떤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지 궁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 집사의 취미공간 : 혜부작혜부작

이현혜

매일 집이 좋은 집순이 현혜님은
사부작사부작 티코스터를 만들며
고양이 베리와 솜을 모시고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