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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어요? 당장 달려 갈게요!

[PEOPLE] 말발굽 아티스트 이훈학 장제사를 만나다

by Eunju, Eugene2023.04.26

인간이 말을 탄 모습이 그려진 유물은 기원전 2100~1200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 유적지부터 발견되고 있다.

그 말인 즉, 인간이 말을 타기 시작한 건 최소한 3000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인간이 말을 타기 위해 말발굽에 편자를 붙이는 장제(裝蹄)의 역사도 짧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장제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

국내에는 현재 50여명 장제사가 활동 중이다. 그 중에서도 이훈학 님은 단연 최고의 장제사로 꼽힌다.

낯설지만, 무언가 말로 하기 어려운 원초적인 매력을 간직한 장제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훈학 님을 이천의 한 승마클럽에서 만났다. 두 마리 털뭉치 친구도 함께.

Q.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장제사 이훈학이라고 합니다. 코커스파니엘 심청이와 휘핏 삼순이와 반려생활 중이에요.

Q. 장제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낯설어요.
네~ 사람처럼 말도 발톱이 계속 자라기 때문에 40~50일마다 정리하고 편자를 갈아줘야 해요. 마리 당 1시간 정도 걸리는 그 작업을 ‘장제’라고 부릅니다. 흔한 직업은 아니죠.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 약 100명 정도 자격증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중 필드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은 한 5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말은 장제를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야생의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람을 태웠을 때 하중이 늘어나서 발굽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편자를 해주는 거거든요. 장제를 안 하면 발톱이 심하게 변형되고 관절 질환이 올 수 있어요. 말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지만, 말의 입장에선 사람으로 인한 불편인 셈이죠.

Q. 편자를 박을 때 말이 아프지는 않아요?
네~ 고통은 없어요. 말은 발톱 두께가 1cm가 넘거든요. 하지만 발톱이랑 살 사이에 못을 박는데 0.1mm만 잘못 박아도 신경을 건드려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그걸 손의 감각으로 알아내야 해요. 그래서 해부학적으로도 공부를 많이 해요. 개체마다 신경 위치가 달라서 경험이 중요해요. 그래서 학원이 아니라 도제로 배울 수 밖에 없고, 5년 정도 견습을 해야 스스로 장제를 할 수 있어요. 10년은 넘어야 전문가란 소리를 들을 수 있고요.

Q. 훈학 님은 어떻게 장제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원래는 골프를 치다가 한동안 타투이스트로 활동했어요. 그 때만 해도 타투를 직업으로 하기엔 쉽지 않아서 그만뒀어요. 그렇게 쉬고 있던 차에 매형에게 장제를 소개받았어요. 매형이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메달리스트이고, 승마클럽을 운영 중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대장장이 같은 일이라고 해서 재밌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생각과 완전 달랐어요. 첫 날부터 말 다리를 들고 편자 빼는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이전에는 말을 본 적이 없어서 엄청 무서웠어요.

Q. 처음에는 말에 많이 받히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럼요. 1년 동안은 안 다치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기였어요. 매일 밟히고 차였어요. 그런데 제가 겪어 보니까 고의로 공격하는 건 1천 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이고, 대부분은 제가 말의 움직임을 몰라서 옆에 있다가 말이 그냥 움직이거나 내려놓은 발에 차이고, 밟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하면서 합니다.

Q. 좋은 장제사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판단력이 좋아야 해요. 말이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최대한의 운동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조건을 결정하는 판단력이요. 운동 효율에서 장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5~10% 정도에요. 엄밀히 따지면 잘 뛰는 애들은 장제와 관계없이 잘 달려요. 하지만 같은 수준의 말이면 작은 차이로 결과가 바껴요. 그래서 하이레벨 선수에게는 장제가 정말 중요해요. 그 분들은 장제비를 더 주고라도 실력 좋은 저 같은 장제사를 쓸 수밖에 없죠.ㅎㅎ





Q. 말이 처음엔 무서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처음에는 계속 부대껴야 하니까 싫었어요.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요. 그런데 점점 귀엽더라고요. 솔직히 되게 사랑스럽고,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냥 귀여워졌어요. 까불어도 귀엽게 받아들여지게 되더라고요.

Q. 훈학 님 유튜브를 보니까 연장도 직접 만들어 쓰는 것같던데요.
네. 제가 집중해서 무언가 만드는 걸 좀 좋아해요. 유튜브를 보니 외국 사람들은 칼이나 망치 같은 걸 만들어서 쓰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따라 한 거예요. 연장 만드는 스킬이 편자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까 연습삼아 만들기도 좋고요.


* 이훈학 님은 유튜브 채널 사부작장제소(@sabujakfarrier)와 사부작스미스(@sabujaksmith218)를 운영 중입니다.

Q. 심청이(코카스파니엘)와 삼순이(휘핏)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심청이는 와이프와 키우기로 합의하고 입양을 했고, 삼순이는 다른 집에서 파양돼서 저희가 데려왔어요. 삼순이가 오기 전에 휘핏을 키우는 지인에게 호피무늬가 멋진 휘핏을 한 마리 데려왔는데 일 년 정도 있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삼순이는 그 아이의 아랫배 강아지였어요. 그래서 삼순이 파양 소식을 듣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죠.

Q. 심청이와 삼순이는 잘 지내나요?
심청이는 9살이고, 삼순이는 3살인데요. 심청이가 삼순이를 엄청 귀찮아 해요. 서열은 명확하게 심청이가 위인데, 삼순이 존재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긴 다리로 자기를 넘어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Q. 아이들이 승마장 개처럼 너무 편하게 잘 지내는데요.
네. 승마하는 분들이 위험하니 말을 놀라게 안 하게끔 교육한 것 외에는 뭘 딱히 가르치지 않았는데, 제가 작업하는 동안 그냥 풀어두고 알아서 각자 할 일을 해요. 그리고 집에 갈 때 되면 다들 모여요. 와이프는 저한테 애들을 너무 막 키운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져서 굳이 애들을 과잉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Q.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승마장을 자주 다녀서 말과 잘 지내겠네요.
말 옆에 개가 따라가는 외국 사진을 보고 많은 분들이 환상을 갖지만, 실제론 서로 그냥 무시해요.ㅎㅎ 승마장에는 개를 많이 키우는데요. 다들 말한테 한 번씩 밟혀요. 그리고 나면 이제 말 근처에 안 가죠.

Q. 심청이와 삼손이가 있어서 참 좋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매 순간 그래요. 특히 살이 닿을 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저희 부부랑 심청이, 삼순이 모두 한 침대에서 같이 자거든요. 맨날 싸우면서도 꼭 같이 자요. 삼순이가 다리를 쭉 뻗고 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면, 저는 항상 발로 밀어내고, 삼순이가 삐쳐서 내려가면 와이프가 다시 올려주고 그래요. 없으면 허전하고요. 평소엔 신경을 잘 쓰지 않아도 어슬렁거리며 제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고 좋아요.

Q. 쉬는 날에는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원래는 캠핑과 낚시를 자주 다녔는데, 와이프가 얼마 전부터 편의점을 시작해서 온 가족이 같이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게 됐어요. 가끔 어떻게 시간을 빼서 하루 놀러 가려고 하면, 아이들 두고 가는 게 또 마음이 아파서 결국에는 근처 공원에 가게 돼요. 다른 개들 보면 심청이가 짖어서 애견 운동장은 못 가고요.

Q. 삼순이가 하고 있는 목줄이 참 예뻐요. 어디 브랜드 제품이죠?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와이프가 가죽 공예를 배웠는데, 어깨너머로 보고 유튜브도 참고하면서 막 만들었어요. 제가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잘 만들어요. 흉내만 낸 거라 실밥 자국이 조금 지저분하긴 해요. 원래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 목줄인데, 지금은 삼순이가 하고 있죠.

Q. 마지막으로 심청이, 삼순이와 훈학 님의 투게더를 정의해주세요.
저희는 ‘각자도생 투게더’인 것 같아요. 일하러 나오면 각자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을 별로 개라고 생각 안 하고 같은 인격체로 대하니까 각자도생 하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ㅎㅎ


이훈학

말들의 안전한 뜀박질과 관절 건강을 위해
말발굽을 정성스레 관리하는 톱 장제사
이훈학 님은 심청이, 삼순이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