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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_ 강지나 님과 시호가 답하다

[問101] 반려인 101명에게 묻다

by Eunju2023.04.24

강지나 38세 / 디자이너 / @cm_ykstudio

시호 시바견 / 8살 / M

우리는… 결혼한 첫 해, 크리스마스. 시호와의 첫 만남. 크리스마스 기적 같았어. 단단히 마음먹고 입양한 건 아니라 매우 갑작스러웠지만 이제 가족이 생겼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참 벅찼어. 고양이만 잔뜩 있는 투명상자 구석에서 굉장히 의기소침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집에 오자마자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 들었어. 나의 신혼 초는 친구를 만나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 집에만 오면 침대에 붙어서 티비와 핸드폰만 보는 피곤에 쩔은 일상을 보냈지. 그런 우리에게 시호는 새로운 활력소이자, 최고의 친구, 가족이 되어 주었어.

내가 보는 시호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특이한 건 티비를 정말 집중해서 잘 봐. 만지면 도망가고, 안 만지면 만져 달라고 조르고. 집에 가자 하면 털썩 앉아 고집부리고, 산책 가자고 말하면 나가기까지 한참을 숨바꼭질 해야 하는 청개구리야. ‘같이 자자’고 하면 자기 집에서 따로 자다가 문득 잠이 깨 일어나보면 다리에 바짝 붙어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으로 따지면 ‘츤데레’랄까? 무심하듯 시크한 저 표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할 때가 많아. 그래도 어찌나 순하고 착한지 먹던 간식을 친구가 뺏어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니까.

시호가 보는 나는… 바쁜 엄마? ‘엄만, 왜 이렇게 바빠. 그래도 뭐, 오늘 나 아빠랑 재밌게 잘 놀았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조금 미안해지네. 어렸을 적에도 집에 반려견이 있었지만 부모님 몫이 더 컸어.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키우는 건 거의 처음이라 이렇게 엉망진창 서툰 내가 시호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어. 항상 마음이 바빠 남과 주변을 돌아보는데 서툰 내게 이렇게 맘 넓고 천사 같은 시호가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시호를 만나고 더 성숙한 사랑과 책임감에 대해 배우게 된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건
시호의 귀여운 눈빛
나도 모르게 껄껄 웃게 돼

우리의 일상은… 그냥 평범하고 우리답달까. 일단 시호는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 “안돼!”를 입에 달고 사는 잔소리쟁이 나와는 다르게 아빠는 시호가 어떤 행동을 해도 토달지 않고 자유롭게 놀게 해주는 여유롭고 느긋한 성격이거든. 그리고 직장을 다니는 나와 달리 아빠는 프리랜서라 시간이 자유로워서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 애착관계가 보다 좋은 편이야. 그래도 시호가 애교를 부리는 일이 흔하지 않은데,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 나가지말라고 종아리에 매달리거나 양말을 물고 안 놔줄 때가 있어. 흠, 그럴 때마다 회사가 더 가기 싫어. ? 그래도 주말에는 가까운 서울숲에 가서 멍멍이 친구들도 잔뜩 만나고, 어딘가 ‘귀여워~’ 소리가 들리면 그쪽으로 와다다다 쫓아가서 꼭 쓰담쓰담 예쁨 받으며 귀여운 관종기를 뽐내는 즐거운 산책일상을 보내고 있어.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건 시호의 눈동자.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시호의 귀여운 눈빛이 있어. 그 눈빛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껄껄껄 웃게 돼. 흰자위가 희번덕한 그 눈빛은 사실 불만이 있거나(특히 귀찮게 할 때) 궁금할 때 우리를 집중해서 빤-히 쳐다보면서 생기는 표정이야. 계속 보고 싶어서 자꾸만 귀찮게 하고 싶은 마음 오만 퍼센트지만… 꾹 참아야겠지?
싫어하는 건 산책로에서 자전거랑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 집 앞에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멋진 도보 산책로가 있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금지된 길인데 지키지 않는 분들이 많아. 한번은 지나가는 자전거가 시호 발을 밟고 갔어. 사과도 없이 도망가 버려서 붙잡지 못했어. 너무 놀라고 화나는 상황이었어. ? 가뜩이나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좋아하는 산책로를 맘 편히 걸어 다니지 못할 때 너무 속상해.

우리가 꿈꾸는 건… 함께 여행 가기?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국내여행은 시호와 함께 할 수 있지만, 해외여행은 시호를 비행기 수화물에 맡겨야 하는 게 불안해서 남편과 둘이서만 간 적이 많아. 여행지를 돌아다니다 멍멍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걸 보면 시호 생각이 나서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적도 있어. 장시간의 비행이 시호에게 고단할까 섣불리 실행은 못하지만 우선 국내여행이라도 자주, 그리고 많이 다니면서 매일 다니는 산책로 말고도 더 신나고 즐거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시호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너무 뻔하지만.. 시호야, 사랑해! (미안해) ? 자꾸 안된다고만 얘기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가끔 너를 두고 친구들과 논다고 집에 늦게 들어올 때도 너무 미안하고, 고단하다는 핑계로 더 신나게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왜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은 건지… 시호가 우리에게 와줘서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사랑이 샘솟는지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덧붙이자면… 엄마 아빠는 너가 뭘 해도 마냥 예쁜데 병원에서 살 조금만 빼라고 하니까 간식 조금만 줄이자.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하자. 사랑해, 시호야!

쉿! 이건 비밀인데…천방지축 말썽쟁이 엄살왕 시호의 아가 시절,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키우던 로사라는 친구와 잠깐 함께 지냈어. 그때 로사는 13살이었는데, 몸도 좋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았던 상태라 집에서 일하는 남편이 보살피며 함께 살았어. 처음에는 뭣도 모르는 혈기 왕성한 시호가 로사와 놀겠다며 방방거리며 엄청 귀찮게 하곤 했는데, 언제부터 시호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로사 옆에서는 얌전히 기대고만 있거나 마주보고 바라만 보는 등 얌전해 지더라고. 눈이 보이지 않아 벽에 자주 부딪히던 로사를 쫓아다니며 길잡이 역할을 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 엄청나던 엄살도 없어지고... 뭐라고 하지, 사람으로 치면 철이 든다고 해야 하나? 기특했지. 로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그 슬프고 힘겨운 시간을 우리 셋이 함께여서 극복할 수 있었어. (로사야, 너도 잘 지내고 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