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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랑 함께, 소금이네 문단속
[PEOPLE] 양모펠트 작가 정은주 님을 만나다
by Gayeon, Eunju2023.04.14
우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을 기억하기 위해 작은 보석이나 소품을 간직하곤 한다. 보드라운 촉감으로 반려동물의 온기를 붙드는 양모펠트 인형도 흔히 소장하는 메모리얼 아이템 중 하나다.
재작년 정은주 님의 가족은 사랑하는 반려견 순돌이를 잃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아이였기에 가족 모두 오래도록 슬픔에 잠겼고 특히 아버지의 한숨이 가장 깊었다.
그를 위로한 건 은주 님이 직접 만든 인형이었다. 수강생 시절 만들어 수려한 작품은 아니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순돌이 인형은 은주 님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사랑하는 소금이와 든든한 우유를 데리고 매일 성수동 작은 공방으로 출근한다.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성수동에서 양모펠트 공방을 운영하는 정은주입니다. 3살된 말티즈 소금이를 키우고 있고 잘생긴 진돗개 우유를 임시보호하고 있어요.
Q. 소금이는 어떻게 만났어요?
남편과 결혼하고 1년 즈음 지난 후에 전문 켄넬 브리더를 통해 데려왔어요. 말티즈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남편이 하얀 강아지를 원했고 소금이랑 딱 눈이 통해버렸어요. 솔직히 저는 하얀 모색은 관리하기 어려울 것 같아 부담스러웠거든요. 웃긴 건 지금도 제가 매일 소금이 빗질해주는데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하고 예뻐만 해요!
Q. 소금이 이름은 은주 님이 지어줬나요?
먹는 거로 지어야 오래 산대서 음식 중에 하얀 걸 생각하니까 설탕, 소금 정도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드라마 ‘팬트하우스’가 유행했는데 극중에서 죽은 강아지 이름이 설탕이었거든요. 그래서 설탕 말고 소금으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이거 남편은 모르는데 제가 기독교라서 소금이라 지은 것도 있어요. (으르릉 성질 부리는 소금이에게) 어허, 안돼.
Q. 단호하게 아이들을 케어 하는 모습이 능숙해보이는데,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셨나요?
본가에서 부모님과 개를 여러 마리 키웠어요. ‘순돌이’라는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랑 푸들 두 마리를 키웠는데 재작년에 순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Q. 얼마 안 됐네요. 온 가족이 힘들었겠어요.
맞아요. 특히 아빠가 되게 슬퍼하셨어요. 1년 넘게 슬픔에 빠져 계셨죠. 순돌이 이야기만 나오면 울고.
Q. 순돌이가 아빠랑 가장 가까웠나 보군요.
학대당하던 순돌이를 아빠 친구분이 구조하셨다가 잠깐 아빠한테 맡겼는데 정이 들어서 키우게 됐어요. 그때 저는 딱 스무 살이 돼서 대학교를 가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고 남동생도 멀리 기숙사 생활을 해서 순돌이가 자식과 다름없었어요. 아빠가 출근 전에 순돌이 산책을 도맡았고 퇴근한 후에도 밖에서 뛰어 놀아주니까 순돌이가 아주 아빠 바라기였어요. 그리고 순돌이가 아빠 목숨도 구해준 적이 있어요!
Q. 정말요? 어떻게요?
같이 산을 타다가 멧돼지를 마주친 거예요. 순돌이가 진짜 망설임 하나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서 멧돼지를 쫓아냈대요.
Q. 세상에… 전래동화에 나올 법한 스토리. 과연 생명의 은인이네요. 아버지는 펫로스 증후군를 극복하셨나요?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순돌이 유골을 집 마당 소나무 밑에 묻으셨어요. 얼마전 까지만 해도 유골함을 방에 두시고 매일매일 인사하셨는데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갑자기 묻었어요. 순돌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 봐요.
Q. 양모펠트 공예를 시작한 계기가 아버지랑 관련이 있나요?
네. 순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서 선물할 만한 물건을 찾던 중 우연히 양모펠트를 접했어요. 이왕 의미 있는 선물하는 거 내가 직접 만들어볼까 싶어서 클래스를 알아보다가 자격증반에 덜컥 발을 들였어요.
Q. 보통 취미로 시작하던데, 혹시 미술을 전공하셨나요?
아뇨. 관광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의외인가요? 저는 평생 직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삼 년 정도 일을 하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해서 일하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작은 회사 안에서 불안정한 느낌이 있다 보니 뭔가를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양모펠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과정을 밟아 나갈수록 재밌었어요.
Q. 부시시한 양털이 단단한 인형이 되는게 신기하네요.
바늘을 자세히 살펴보면 홈이 파여 있어요. 이 특수 바늘로 양모를 콕콕 찌르면 바늘이 왔다갔다하면서 단단한 털뭉치를 만들어요.
Q. 양모 말고 강아지 털로도 인형을 만들 수 있나요?
개털은 양모에 비해 빳빳해서 그것 만으로 만드는 데에는 무리가 있고, 개털을 양모 사이사이에 섞어서 인형을 만들 수는 있어요. 그래서 보통 무지개 다리 건넌 반려동물을 인형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 아이의 털을 조금 넣어서 제작해주곤 해요.

Q. 양모펠트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나요?
아무것도 아닌 양모 털을 찔러서 형체를 완성하는 과정,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참 재밌어요. 그리고 직접 만든 인형을 지인에게 선물했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많이 느껴요.
Q. 아버지에게 양모펠트 인형을 선물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시라 ‘음!’ 하고 끝이었어요. ? 그러시고는 제일 잘 보이는 TV 위에 딱 두시더라고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에요. 배우면서 만들다 보니 오래 걸리기도 했고 지금의 제가 봤을 때 너무 마음에 안 들지만, 아빠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Q. 양모펠트가 많은 걸 바꿔 놓은 것 같아요. 소금이네 공방을 차리면서 은주 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성향이에요. 그런데 은행에서 일을 하면서 모진 일을 겪다 보니 사람을 싫어하게 됐어요.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공방을 열고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다시 사람이 좋아졌어요. 클래스를 하면서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밝고 사람 좋아하는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Q. 성수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우유가 없을 때는 솔직히 동네 사람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어요. 소금이는 흔히 볼 수 있는 말티즈라서 사람들이 관심을 안 주더라고요. ? 그런데 우유와 산책하기 시작하니까 온 동네에 소문이 난 거예요. 소금이네에서 진도를 임보 한다더라~ 하면서요. 건물 2층에 있는 언니도 대형견을 키워서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친해졌고요. 대형견 동반이 가능한 가게에 가면 거기 사장님들과 또 친해지고. 가끔 근처 가게 사장님이 우유 산책을 시켜줘요. 동네가 사람 냄새가 나요. 오래 있고 싶어요.
Q. 동네 사람들이 우유를 예뻐해서 좋네요. 그래도 모두가 대형견에게 호의적인 사회가 아니라서 우유와 함께 다니며 속상한 상황도 겪었을 것 같은데요.
왕왕 있죠.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우유랑 산책하면서 저는 한 세네 번 싸웠어요. 우유한테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어요. 큰 개를 왜 혼자 끌고 다니냐부터 시작해서 입마개는 왜 안하느냐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고.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내는 그런 사람들은 설명을 해드려도 이미 저와 우유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 안 통해요.
Q.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나요?
저도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공부하시라고 말씀드려요. 입마개 하라고 시비거는 사람한테는 마스크나 쓰시라고 말하고요. 그리고 어떤 분은 대형견 3마리를 키우시는데 산책할 때마다 캠을 들고 다닌대요. 촬영하는 척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시비를 안 거니까요. 꿀팁이에요. 저도 시도해볼까 봐요.
Q. 우유는 언제부터 함께 살게 되었나요?
작년 7월부터요. 행동사(행동하는 동물 사랑)라는 단체에서 데려왔어요. 그때는 4kg밖에 안 되는 작은 강아지였는데 벌써 이렇게 컸네요. 지금은 22kg의 호리호리한 강아지가 됐어요. 동네에서 제일 키 큰 우유라고 불려요.
Q. 체구에 비해서 슬림 하네요! 모델 같은 비주얼이에요. 임보를 시작한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 입양 문의는 없나요?
네. 제가 SNS에 우유 이야기를 특히 자주 올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입양 문의가 단 한 건도 없었대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 우유를 입양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4년이 되어서 2세 계획을 하고 있는 터라 현실적인 걱정이 있어요.
Q. 입양을 보내느냐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군요.
맞아요… 입양 문의가 없어서 초조한 동시에, 떠나보내는 상상만 해도 슬퍼져요. ‘캐나다 체크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막 오열해요. 최근에 원데이 클래스 참여하셨던 분께서 저희 부부랑 똑같은 상황이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한쪽은 입양을 하자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아기를 낳으면 힘드니 보내자는 입장이었는데 결국 해외 입양을 보냈대요. 그런데 그 선택을 결국 후회하고 새로운 아이를 입양하려고 준비 중이래요. 우유랑 저희도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결론이 나겠죠.
Q. 강아지랑 갓난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개와 같이 쭉 자라왔던 사람이라서 긍정적인 편이에요. 개를 키우면서 생로병사, 이별을 다 배운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아요. 털 빠지면 어떡하냐, 산책은 어떡하냐, 걱정이 많으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털은 치우면 되고 산책은 하면 돼요! 사람이 부지런해지면 되는 거죠. 저는 로망이 있어요. 아기 기저귀를 갈아서 우유한테 주면 우유가 그걸 딱 물어서 버리는 거예요! ?
Q. 어떤 결정을 내리던 우유는 행복할 거예요. 소금이는 우유랑 잘 지내나요?
처음 우유가 집에 왔을 때 소금이는 “쟤는 뭔데 우리집에 왔지?”하는 눈빛으로 조금 경계했지만 금세 인사하고 잘 지냈어요. 그리고 한 달 정도까지는 “너 왜 집에 안 가고 우리집에 계속 있어?”라고 말하는 느낌? 그래도 소금이가 우유한테 많이 양보하더라고요. 두 달로 접어드니까 그때부터는 “너 안 가는구나!”를 깨닫고 같이 편하게 누워 있고 놀더라고요.
Q. 은주 님과 소금, 우유의 투게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출근 투게더’요. 좋아하는 일을 아이들이랑 함께 하니까 두 배로 즐겁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