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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된 설이, 그리고 세발고양이
[PEOPLE] 모델 백승연 님과 막냉이를 만나다
by Eunju2023.02.08
즐거움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이다. 행복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면역력은 높여주며, 이는 당연히 건강으로 직결된다.
동물행동연구학자, 조너선 밸컴 (Jonathan Balcombe)은 동물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며, 즐겁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각이 많은 우리 인간들에게 즐거움 버튼을 자유자재로 누르는 일은 쉽지 않다. 가족과 잃거나 장애를 얻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델 백승연 님은 재작년 반려견 설이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낸, 동생 같은 아이와의 이별은 쉽지 않았다.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위로가 되었던 건 세발고양이 막냉이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주도록 설이가 맺어준 인연일까? 승연 님이 다리를 잃은 막냉이를 치료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듬어 준 것처럼, 막냉이는 순진무구한 행동으로 승연 님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었다.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모델, 백승연입니다. 활동한 지는 12년 정도 되었어요. 재작년 겨울에 반려견 백설이를 떠나 보낸 후 지금은 반려묘 막냉이와 살고 있어요.
Q. 모델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학생 때 용돈벌이 하려고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이 길로 계속 가게 됐어요.
Q. 오랫동안 꾸준히 한 걸 보면 적성에 맞았나봐요.
사진이나 영상 결과물이 잘 나오면 그 자체로 뿌듯하기도 하고, 제가 촬영했던 제품이 다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만족스럽더라고요.
Q. 반평생 개를 키우다가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잖아요. 원래 고양이를 좋아했었나요?
딱히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고양이한테 정 주지 말고 함부로 챙겨주지 마라는 말씀을 자주 하기도 했고,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몰랐어요. 왜 캔따개 되길 자처하고 고양이를 모시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제가 집사가 돼서 수발을 들고 있더라고요.
Q. 어쩌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우연히 길고양이를 봤는데 이상하게 눈에 밟히더라고요. 한 번 두 번 밥을 챙겨 주다가 무언의 약속이 되어서… 그렇게 스며들었나봐요.
Q. 길고양이 매력에 푹 빠졌군요.
처음으로 고양이 사료도 사보고 장난감도 사봤어요. 동생이랑 길고양이를 쫓아다니면서 사냥 능력을 길러 줘야 한다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 한편으로는 고양이들을 평생 책임지지 못할 거면 이렇게 친해지는 게 오히려 부정적일 것 같은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도 오늘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한 끼라도 더 먹여서 보내자는 마음때문에 계속 갈팡질팡 했어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엔 우산을 쓰고 나가서 차 밑을 살펴본 적도 있어요.
Q. 막냉이는 어떻게 만났어요?
밤에 동생과 야식을 사러 가다가 작고 예쁜 고양이가 우는 걸 봤어요. 배고파 보여 캔을 사주니까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뭐에 홀린 듯 캔을 하나 더 사줬더니 먹다 말고 작은 소리로 우는데, 왠지 형제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다려보니 건너편에서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더 오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새끼 고양이처럼 생긴 작은 아이가 어미 고양이였어요.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잊히지 않아요. 그 아기 고양이 두 마리 중 한 아이가 막냉이에요.
Q. 이름을 왜 막냉이라고 지었나요?
막내 고양이라서 막냉이라고 불렀어요. 처음에 길에서 만날 때는 혹여나 정 들까봐 이름도 안 지었는데, 밥 먹으라고 부르긴 해야 해서 대충 지었죠.
Q. 가족으로 맞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되게 추운 날이었어요. 밥을 주던 곳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 다녔죠. 동네를 한 바퀴를 돌고 오니, 다른 고양이들은 와서 밥을 먹는데 막냉이만 안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은 안 오나 보다 하고 가려던 순간에 막냉이가 서글프게 울면서 나타났어요. 한쪽 다리가 거의 잘려 나간 모습이었어요. 굉장히 충격 받아서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도의적으로는 막냉이를 구조해서 치료하는 게 맞는데, 그 당시 노견인 설이가 병원 치료 중이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리고 불쌍하다고 막 데려와 놓고 입양 못 보내면 제가 책임져야 하는데… 쉽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고요.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살리고 보자고 결정했어요. 외면하면 평생 마음에 짐으로 남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부터 구조를 시작했어요.
Q. 구조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나흘 정도 걸렸어요. 다리가 하나 없는데도 엄청 빠르고 날렵하더라고요. 막냉이가 원래도 겁이 많은 아이여서 밥 줄 때도 맨날 숨어있다가 마지막에 나와서 먹고 그랬거든요. 어찌어찌 당근 마켓에서 통덫을 빌려서 설치를 하고 기다렸어요. 겨울을 앞두고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그 날 밤까지 막냉이를 못 잡으면 포기해야겠다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통덫으로 가봤는데 막냉이가 선물처럼 들어와 있더라고요. 얘는 살 운명이었던 거예요. 바로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Q. 정말 다행이네요. 그리고 막냉이 구조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했을 승연 님의 입장이 이해가 가요.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본가에는 이미 돌보고 있는 강아지가 두 마리나 있고 한 마리는 아픈 상황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길고양이를 신경쓴다는 게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생명 앞에서 이런 걸 따지고 있는 제 스스로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많이 울었어요.
Q. 조심스럽지만 장애묘를 키우는 걸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막냉이를 키우며 느꼈던 점을 알려주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처음에는 장애묘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네 발 달린 고양이랑 다를 게 없어요. 점프력이 조금 떨어질 뿐이지 사냥 놀이도 잘 해요. 얼마 전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잘린 부분에 근육이 많이 붙었더라고요. 고양이는 사람보다 회복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다리가 하나 없다고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힘들어 하지 않아요.
Q. 막냉이가 집에 와서 설이를 처음 만난 날 이야기를 해주세요.
막냉이를 데려 오기 전 고양이 수의사 유튜브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공간을 분리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정석이래서 설이를 방에 두고 문에 펫도어를 단 후에 담요로 가려서 둘이 만날 수 없게 했어요. 근데 막냉이가 궁금하다고 너무 우는 거예요. 그래서 담요를 조금씩 열어서 인사할 수 있게 해줬죠. 설이도 막냉이를 보고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Q. 둘이 잘 지냈나봐요.
네! 막냉이 성격이 얌전하고 소심하고 설이는 나이가 많다보니까 균형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늙은 개와 어린 고양이를 키우는 웹툰을 보면서 되게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막냉이와 설이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고마울 따름이에요.
Q. 설이는 어떤 아이였나요?
2002년, 제가 열 살 때 우리집에 왔어요. 인생의 3분의 2를 설이와 함께 했죠. 저희 이모께서 돌봐 주시던 시골 동네 똥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개중에서 흰 강아지가 딱 한 마리 있었어요. 그게 설이에요.
Q. 초등학생 때 만나서 인생을 함께 한 거잖아요. 설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설이에게 미안한 게 많아요. 지금이야 반려문화가 많이 좋아졌는데, 20년 전에는 사료도 대충 먹이고 산책도 가끔 해주면 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때는 한낮 꼬맹이였던 터라 설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요. 밖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설이가 무릎 위로 올라오면 어린 나이에 내려가라고 그러고. 그게 아직도 죄책감이 커요.
Q. 그래도 설이는 정말 행복했을 거예요. 20년 세월이면 함께 한 추억이 많겠어요.
설이가 화장실을 정말 잘 가렸는데, 언제 한번 부엌에서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설이를 혼내셨어요. 그 뒤로 설이는 실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설이가 죽기 전, 엄마가 설이를 안고서 “설아 고생했어. 이제 잘 가. 괜찮아”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엄마 무릎 위에서 오줌을 싼 거예요. 그걸 엄마는 설이가 옛날 일을 복수한 거라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차라리 잘 됐다, 설이 마음 편하고 엄마도 마음 편하겠네”라면서요. 엄마도 그 일을 내내 맘에 담아 두셨나봐요.
Q. 설이 장례는 어떻게 치뤘나요?
수목장을 했어요. 설이가 저희에게 온 계절도 겨울이었고, 떠난 계절도 겨울이라서 흰 동백나무를 설이 나무로 골랐어요. 큰 나무는 시골 마당에 있고 작은 나무는 화분으로 옮겨 뒀어요. 제 나름의 안전장치에요. 나무가 하나 죽어버리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Q. 동백꽃이 필 때마다 설이 생각이 나겠어요. 설이가 떠난 후 막냉이에게 변화가 일어났나요?
항상 있던 친구가 사라지니 왠지 쓸쓸해 보이고, 어쩐지 분리불안이 생긴 것 같았어요. 설이가 맨날 잠만 자더라도 그 옆을 기웃거리면서 온기를 느꼈을 테고 서로의 존재를 나름 크게 인식하고 있었나봐요. 저는 막냉이도 설이가 떠난 걸 알 거라고 생각해요.

Q. 막냉이가 승연님이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요.
설이 장례를 치르고 정말 초상집이었지만, 막냉이 덕분에 저랑 동생이 웃게 되더라고요. 주문해뒀던 설이 관이 도착했는데 막냉이가 뽁뽁이 포장 비닐을 가지고 신이 나서 노는 걸 보고 펑펑 울다가 웃기도 했어요. 만약 막냉이가 없었다면, 지금 저의 모습과 정말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동안은 기댈 곳이 필요해서 막냉이한테 엄청 집착했거든요. 불안감도 컸고, 그 때의 제 모습이 건강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래서 신이 있다면, 제가 다시 살 수 있도록 막냉이를 선물로 준 게 아닐까 싶어요.
Q. 고양이는 처음 키워보는 건데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고양이 육아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고양이가 너무… 개복치인 거예요! 스트레스 조금 받으면 방광염 온다고 하고 심부전은 나이 들면 기본이고 이동도 쉽지 않고. 뭐만 하면 아프다고 하니까 걱정이 컸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행히 아픈 곳은 없어요. 겨울마다 감기에 걸리긴 하지만요.
Q. 고양이랑 개랑 어떤 점이 가장 달라요?
강아지는 부비고 반기고 “나 좀 봐줘! 난 네가 좋아! 언니가 좋아!”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느낌이라면, 고양이는 조용히 붙어서 사랑을 건네는 느낌이에요.
Q. 그동안 돌봤던 막냉이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어요?
다른 가족을 꾸려서 바로 옆 동네에서 잘 살고 있었더라고요. 자식도 생겨서 밥을 몇 번 챙겨줬어요. 남들이 좀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막냉이를 구조하고 나서 다시는 길고양이를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결정했어요. 그때 힘들기도 했고, 또 다쳐서 나타나면 분명 외면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마음 단단히 먹고 한동안 길고양이를 외면했어요. 그런데 생활이 안정되니까 이게 어쩔 수 없는건지… 애들이 자꾸만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가방에 항시 일회용 접시랑 사료를 챙겨 다니고 있어요. 가끔 만나면 밥 주려고요.
Q. 막냉이와 함께 있을 때 제일 행복한 시간이 언제인가요?
다들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은데, 매순간이 행복해요. 막냉이가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예뻐 죽겠어요. 감히 말하는 거지만, 저는 엄마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막냉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된 기분을 비슷하게 느끼고 있어요. 막냉이는 여전히 아기 같고 평생 아기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Q.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승연님은 반려동물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 해주나요?
제가 그걸 설이에게 배웠어요. 설이 살아 있을 때는 말은 많이 걸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잘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설이가 떠나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말버릇처럼 쉬워지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막냉이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게 어렵지가 않아요. 설이가 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 거예요.
Q. 승연 님과 막냉이의 투게더를 정의한다면 무엇인가요?
평생 투게더요. 막냉이랑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