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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삼 년이면 대본을 읊는다
[CULTURE] 반려 셀럽 틸다 스윈튼을 소개하다
by Eunju2022.12.02
아무리 배우라도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은 쉽지 않은 결심이다.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서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은 티베트에서 수행하는 마법사를 연기하기 위해 머리를 밀었다. 반삭도 아니고 스킨헤드로 말이다!
틸다의 분장은 완벽했고 나는 영화에 금세 빠져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소화하기 어려운 스타일도 척척 흡수하는 능력은 배우로서 최고의 덕목이다. 모호한 안색과 마른 뼈대는 언뜻 보면 연약해 보이지만, 영화 속 틸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배우로 성공하기 전 틸다의 꿈은 뭐였을까?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 억만장자? 대배우인 만큼 원대한 포부와 야심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그의 소원은 소박한 편이다.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반려견과 오손도손 사는 것. 그 뿐이다.
지금 그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Scottish Highlands)의 바닷가에서 다섯 마리의 스프링거 스파니엘과 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바라온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럼에도 연기뿐 아니라 디렉팅, 행위예술 등등 작품활동의 범주를 끊임없이 넓혀가는 틸다는 존재 자체가 장르다.
Her Story
스윈튼 가문의 계보는 화려하다. 증조부 조지는 스코틀랜드의 국방부 장관이었고, 부친 존은 영국 왕실 작위를 수여한 육군 장교였다. 텔레비전 브라운관과 탱크와 유사한 장갑차 개발자도 틸다의 조부 격으로 스윈튼 가문의 사람이다.
그는 이 명망 높은 가문의 딸로서 자연스럽게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와 반 친구였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동시에 시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문학적으로 진전은 없었으나, 극단에 들어가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졸업 후 데릭 저먼에게 발탁되어 그의 뮤즈로서 활동하게 된다. ‘카라밧지오(1986)’로 데뷔하고 저먼 감독이 에이즈로 별세하기 전까지 8년 동안 7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2002년, 대니 보일 감독의 ‘비치’를 기점으로 메인스트림에 커리어를 잡는 데에 성공했으며, ‘콘스탄틴’의 천사 가브리엘과 ‘나니아 연대기’의 하얀 마녀 연기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며 영화계에 자리를 잡았다.
중성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데이빗 핀처, 짐 자무쉬, 웨스 웬더슨, 봉준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틸다. 독보적인 캐릭터로 스크린을 활보하며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지금도 6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발하게 작품활동 중이다.
Companimal Life
틸다는 다섯 마리의 스프링거 스파니엘과 함께 바다가 가까운 집에서 살고 있다. 제일 나이가 많은 로지(Rosy)와 여동생 도라(Dora), 그리고 로지의 딸 루이(Louie)와 닷(Dot), 마지막으로 도라의 손자 스노우베어(Snowbear)까지. 왁작복작한 다견가족이다.
틸다의 개에 대한 애정은 오페라 가수인 안소니 로스 코스탄조의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틸다가 제작한 영상 속에는 닷을 제외한 네 마리 강아지들이 바다를 뛰노는 장면이 담겨 있다. 헨델의 곡조에 맞춰 자유롭게 달리는 개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로지, 도라, 스노우베어는 상을 휩쓴 배우견으로 유명하다. 조안나 호그 감독의 ‘수베니어: 파트 II(The Souvenir: Part II)’에서 명연을 펼쳐, 2021년 ‘팜 도그 어워드’에서 팜 도그 상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Palme d’Or)에서 이름을 따온 팜도그상(Palme Dog Awards)은 칸 국제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열연을 펼친 견공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틸다는 시상식에 불참한 세 강아지들 대신 팜도그 가죽 목줄을 걸었고 “개들이 너무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다”는 농담과 함께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을 받았을 뿐”이라고 유쾌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루이는 이달 중 개봉 예정인 ‘디 이터널 도터(2022)’에도 출연했다. 호그 감독은 일찍이 루이의 특별한 잠재력을 발견한 사람이다. 보통 배우견들이 촬영 시간에 감독의 호주머니에 있는 간식에만 관심을 갖는 반면, 루이는 사람의 질문에 집중할 만큼 연기에 진심인 개다.
틸다는 루이의 연기를 지도할 때 감정 전달 과정을 중요한 포인트로 꼽았다. 스스로가 먼저 영화 속 사건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으면 개도 덩달아 실제 상황이라고 믿고 연기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 주인에 그 개'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개에 대한 가치관까지 완벽한 배우다.
Movie Recommendation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올란도(1992)’는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틸다는 특유의 중성적인 마스크와 카멜레온 같은 연기력으로 남성일 때의 올란도, 여성일 때의 올란도 모두를 착실하게 소화해낸다. ‘콘스탄틴(2005)’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연기할 때는 신비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무성(性)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다. 변신의 귀재 틸다 스윈튼, 그가 출연한 영화는 믿고 볼 수 있을 만큼 재밌다. 수많은 고심 끝에 단 4편을 골랐다.
*서스페리아 (Suspiria, 2019)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장르 : 공포, 미스터리
러닝타임 : 152분
플랫폼 : 넷플릭스
아름답고 스산한 메타포의 공포 영화. 1977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틸다 스윈튼은 무용 선생님인 ‘마담 블랑’과 더불어 또다른 2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스포라서 비밀!) 구아다니노 감독과 틸다는 ‘비거 스플래쉬(2016)’와 ‘아이 엠 러브(2011)’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다.
* 옥자 (Okja, 2017)
감독 : 봉준호
장르 : 모험
러닝타임 : 120분
플랫폼 : 넷플릭스
가축과 관련한 윤리적인 이슈가 담긴 어른을 위한 동화 ‘옥자’. 칸 영화제 상영 이후 영상미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틸다 스윈튼은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대표, ‘루시 미란도’를 연기한다.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2)
감독 : 린 램지
장르 : 스릴러, 드라마
러닝타임 : 112분
플랫폼 : 넷플릭스
살인을 저지른 소시오패스의 어머니를 다룬 영화. 아들의 손에 남편과 딸을 잃고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게 된 여성의 삶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틸다 스윈튼은 케빈의 어머니 ‘에바’를 연기한다.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4)
감독 : 짐 자무쉬
장르 : 판타지, 로맨스
러닝타임 : 123분
플랫폼 : 왓챠
21세기 뱀파이어, 아담과 이브의 불로장생 사랑 이야기. 흡혈 본능을 억누른 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흡혈귀의 쌉쌀한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틸다 스윈튼은 ‘이브’를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