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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빈자리, 온기를 추억하며
[PEOPLE] 은비를 떠나보낸 노민혁 님을 만나다
by Eunju2022.11.16
사람의 1년을 개의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7년 정도이다. 우리가 집밖에서 일하고 놀며 시간을 보내는 지금도 개의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흐른다.
“난 우리 강아지 사라지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모든 반려인이 그렇다. 개와 하하호호 놀다가도 문득 미래를 상상하면 애틋함이 느껴지곤 한다.
오랜 시간 곁을 내어준 반려견을 잃는 슬픔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을 정도니까. 이별이 예정된 걸 알면서도 사람이 개를 키우는 뭘까?
아마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일 게다. 세상의 풍파에 지쳤을 때 내게 안긴 따뜻한 털뭉치는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2000년대 아이돌 밴드 ‘클릭비(Click-B)’ 멤버로 잘 알려진 노민혁 님은 지난 10월 반려견 은비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은비를 위한 노래를 선보였다. 공허한 마음을 메우고, 비슷한 입장의 반려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만든 곡이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가수 노민혁입니다. 지금은 밴드 ‘애쉬그레이(AshGRay)’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동시에 반려견 영양제 브랜드 ‘펫테리토리’와 반려동물 동반 카페 ‘미미에토’를 운영하고 있어요.
Q. 민혁 님은 원조 아이돌 클릭비로 유명했잖아요, 식상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가수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타를 잡은 건 순전히 아버지 뜻이었어요. 제가 8살되던 해부터 기타 공부를 강요하다시피 하셨죠.
Q. 어째서 하필 기타였을까요? 아버지도 음악을 하셨나요?
아뇨,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인생에 한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당신은 여러 우물을 파다가 실패한 케이스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그래서 아들인 제가 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길 원하셨나봐요.
Q. 클릭비 멤버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참 기뻐하셨겠어요.
오히려 제가 팀의 메인이 아니라서 되려 실망하셨어요. 그리고 그룹이 해체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2008년, 한창 거리공연으로 애쉬그레이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할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안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음악을 가르쳤는데 아들이 큰 성과 없이 서울 길 한 복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셨던 거죠.
Q. 왜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나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내내 따라다녀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번씩 지하철에서 버스킹을 했는데, 운 좋게도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 소개됐어요. 그 기세를 몰아 열심히 활동을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이상의 열정을 불살랐죠.
Q. 지금 활동하고 있는 밴드, 애쉬그레이는 특별한 뜻이 있나요?
이런저런 사적인 일들로 지쳤던 서른 즈음 음악을 조금 쉬었어요. 그러다 다시 시작하면서 각오를 담아 ‘재(Ash)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이라는 뜻의 애쉬그레이로 밴드명을 정했어요. 그리고 잿빛이라고 하면 시멘트가 떠오르는데, 여기에 회색 도시에 갇혀 있는 현대인을 위로한다는 속뜻을 담았어요. 지금은 믿음직한 후배들이 애쉬그레이를 이끌고 있어요. 그리고 11월 15일 정오에 ‘은비’라는 새로운 싱글을 공개했답니다. 멤버 태현 군이 은비를 위해 작곡한 음악이에요. 이 곡으로 많은 반려 가족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은비와는 어떻게 만났어요?
은비는 아버지 친구분이 보신탕집 앞을 지나가시다 케이지에 갇혀 있는 걸 보고 안타까워서 데려온 아이였어요. 당시 본가에서 키우던 로티라는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얼마 안 된 터라 은비가 아버지의 우울함을 잘 달래 드렸죠.
Q. 민혁 님도 은비와 추억이 많았겠네요.
제가 음악을 그만두고 부산 본가에 내려가 있을 때 은비가 큰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그땐 세상에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집에서 은비랑 같이 지냈어요. 산책시키고, 놀아주면서.
Q. 은비가 많이 아팠다고 들었요.
은비는 처음 집에 올 때부터 몸이 많이 안 좋았어요. 평생 에디슨병(부신피질기능저하증)이라는 호르몬 질환을 앓았죠. 그래서 2주에 한 번씩은 병원에 다녔어요.
Q. 에디슨병의 특별한 증상이 있나요?
호르몬 이상 문제다 보니까 스트레스에 민감했어요. 한 번씩 쇼크도 오기도 해서 집에 혼자 두고 어디를 못 갔어요. 가족 중 한 명은 꼭 집에서 은비를 돌봤어요.
Q. 그럼 결국 에디슨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건가요?
아뇨, 유방암 때문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작년에 암을 발견해서 종양을 빼는 수술을 했어요. 은비가 노견이고 약을 너무 오랫동안 급여해서 마취했다가 못 깰까봐 걱정했는데, 수술은 다행히 잘 마쳤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은비 눈이 이상하길래 녹내장인가 싶어 정밀 검사를 해보니까 암이 많이 전이됐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은비의 고통이 심할 거라면서 안락사를 권하실 정도였어요. 조금 더 일찍 아픈 걸 알아차렸다면, 미리 관리를 했더라면 이렇게 보내진 않았을텐데… 은비한테 미안하죠.
Q.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해요. 민혁 님이 반려견 영양제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네요.
오랜 시간동안 은비를 돌보면서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게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업을 구상할 때 저절로 반려동물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오래전 음악을 할 때에는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가 만든 영양제가 많은 반려 가족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에요.
Q. 은비가 떠나기 전 해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맛있는 걸 마음껏 먹여주고 싶었어요. 은비는 건강 때문에 식단 제한이 많았어요. 근데 맛있는 건 너무 좋아하는 아이여서, 시름시름 앓다가도 ‘간식’이라고 말하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쳐다보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못 먹어봤던 맛있는 간식들을 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줘서...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지 못해서 마음이 사무쳐요.
Q. 은비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나요?
아무 생각없이 구청에 업무를 보러 가는데 은비가 떠올랐어요. 은비랑 매일 산책하던 길이었거든요. 은비가 좋아하는 장소도 보이고요. 모든 게 그대로인데 은비만 그 자리에 없는 거에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어요. 같이 걸었던 추억이 떠올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