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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제주, 한달 살이의 추억

[PEOPLE] 에세이스트 전구슬 님을 만나다

by Eunju2022.11.07

삶이 바쁘게 흘러갈수록 잠시 멈출 용기와 마음을 환기할 시간이 필요하다.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묵은 먼지는 툭툭 털어내고. 새롭고 신선한 공기를 채우는 정결한 의식. 서랍을 정리하듯 잡념을 청소하면, 머릿속은 한결 가벼워진다.

“제주도를 갔다 온 이후로는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고, 그때 모은 에너지가 좀 더 나를 안정되게 한다. 제주도는 그렇게 생각할 시간을 나에게 준다. 마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하쿠처럼.”(제주 동쪽의 시바 中)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환기하는 수단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탁월한 선택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언젠가 고난을 마주할 때, 분명 재도약을 위한 힘이 될 테니.

전구슬 님은 반려견 하쿠와 제주 동쪽 마을에서 한 달을 살며 기록했던 일기를 모아 에세이로 엮었다. 여기에는 제주 여행의 낭만과 더불어, 한 달 동안 배우고 느낀 소중한 감정이 담겨 있다.

무슨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을까? 제주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하쿠는 제주를 어떻게 기억할까? 구슬 님의 글을 읽으며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전구슬입니다. 시바견 하쿠의 누나이기도 하고요. 하쿠와 제주도 한달 살기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브런치에서 에세이 ‘제주 동쪽의 시바’를 연재했어요.

Q. 무슨 공부를 하셨고,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저는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의과대학원에서 수의내과를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동물메디컬 센터에서 소동물 내과 진료를 주로 보고 있어요.

Q. 하쿠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하쿠는 무항문증이었던 강아지로, 보호자 분이 학교 병원에 기증한 아이였어요. 실험실 소속으로 지내던 시절에 그 강아지를 우연히 만나고 친해지면서 결국 제가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배변실금과 분리불안이 심해서 과연 내 손으로 잘 케어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과정을 해결하고 지금은 행복한 집개로 살고 있어요.

Q. 하쿠를 소개해주세요.
하쿠가 가장 많이 듣는 칭찬은 “참 얌전하다.” 에요. 평소에는 시바견 특유의 무관심한 표정으로 지내지만, 신나는 사건을 만나면 얌전하다는 칭찬이 무색할 만큼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편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강아지는 많이~많이 좋아하는 아이에요. 기분에 따라 쫑긋한 귀가 안테나처럼 움직이는게 특징이랍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입이 헤 하고 벌어지기도 하고, 누나를 제일 좋아해서 누나와 꼭 같이 자야 하는 아가야 같기도 해요.

Q. 제주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리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대학 6년도 길었지만, 대학원 2년 동안도 많은 일에 시달렸거든요. 장장 8년간의 시간을 달리고 나니까 취업 전에 길고 긴 휴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도로 떠나게 됐어요.

Q. 많고 많은 여행지 중에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쿠는 겁이 많아 비행기 화물칸을 타는 건 무리였어요. 그래서 배로 이동할 수 있는 국내 여행지인 제주도를 선택했어요. 만약 여행지에서 급하게 어려운 문제에 처해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담도 덜 했고요. 제주도도 섬인지라 내륙으로부터 탈출한 느낌이 드는 멋진 여행지였어요.

Q.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하기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실전 제주 생활은 어땠나요?
상상했던 것보다 제주에는 반려동물 친화적인 공간이 많아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특히 사방으로 바다가 가까워서 마음 내킬 때마다 해변을 갈 수 있었던 점이 좋았죠. 바베시아 같은 감염병이 유행했던 탓에 산과 목장 여행을 계획했던 날에는 하쿠를 펜션에 두고 돌아다녔어요. 그래도 하쿠는 숙소로 묵었던 이층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잘 쉬면서 저를 기다려 주었어요.

Q. 이층집! 낭만적이네요. 묵었던 숙소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안락해서 잠이 솔솔 오는 따뜻한 공간이었어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보송보송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하쿠랑 장난치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요. 제주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은 태풍 예보를 듣고 집에만 있었어요. 2층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오소소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쿠 옆에 누워서 책을 읽었는데, 제가 제일 아끼는 평화로운 추억이에요.

Q. 숙소를 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집이란 가족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집을 그저 공간적인 개념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제주의 이층집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나서, 공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것이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집은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고, 사람이던 동물이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또한 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Q. 어떤 바다가 가장 좋았나요?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우도의 하고수동해수욕장이에요. 얕은 모래 위로 맑은 바닷물이 펼쳐진 곳이었는데, 하쿠랑 첨벙첨벙 물장난 치면서 근심없이 행복하게 놀았어요. 동네 강아지들도 와서 하쿠랑 잘 어울려 놀기도 했고요. 푸른 바닷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인상적이었어요.

Q. 하쿠와 함께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여행하며 작가님의 생각과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여행 전에는 어떤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조급함이 컸었는데, 제주에서 한 달 동안 하쿠와 여행하면서 가끔씩은 이렇게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마음 들었어요. 강박관념이 있다고 해서 또는 조급함이 있다고 해서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생각을 충분히 체득하기에 도시에서의 저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세우면서 시달리게 했던 것 같아요.

Q. 마음에 여유가 생겼군요.
네. 하쿠와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동안 저를 많이 되돌아보았고 또 다시 출발할 용기도 생겼어요. 지금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느낄 때에는 제주도 생활을 꺼내 봐요. 그러면 마음이 서서히 평화로워져요.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Q. 제주에서 발견한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쿠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사실 하쿠가 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한달동안 멋진 제주를 같이 구경하다 보니, 하쿠와 함께 라서 얼마나 기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하쿠와 좋은 추억을 남겨서 그저 감사했어요.

Q.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요새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금은 동물메디컬센터 내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제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는 단계입니다. 여행을 한 뒤로 하쿠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어요. 제가 어디 가려고 하면 당연하다는 얼굴로 따라오려 하더라고요. ㅎㅎ 밖에 못 나간다 싶으면 끼우웅 하고 짜증을 내요. 그래서 요즘에는 근처 애견 동반 카페에 자주 가요.

Q. 하쿠와 작가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병원에 나가는 날엔, 힘들게 침대에서 일어나서 씻고 벌써 아침 산책을 다녀온 하쿠와 인사를 해요. 하쿠는 제가 집을 나설 때까지 끝까지 저를 주시하고, “벌써 가?”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이때가 제일 발걸음이 무거워요. 직장에 가서는 바쁜 병원생활 때문에 집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지내요… 그래도 하쿠는 집에서 부모님이랑 놀고 낮잠도 많이 자요.

Q. 그렇군요. 귀가하면 뭐 하시나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제 발걸음 소리을 알아차린 하쿠가 뛰어나오는데, 잔뜩 신이 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꼬리 살랑살랑~ 깡총깡총 저를 따라오는 하쿠를 보면 빨리 짐을 놓고 놀고 싶어져요. 하지만 시간이 늦은지라 곧 침대에 누워 하쿠랑 하루를 정리하며 잠에 들어요. 이때가 제일 힐링되는 순간이에요. 누워서 바라보는 하쿠의 뒤통수는 참 귀엽고, 털은 너무 보드라워요.

Q. 그럼 휴일에는 뭐 하시나요?
병원일이 남아있거나, 환자가 남아있는 휴일엔 할 일이 있으면 하쿠랑 같이 병원을 가는 편이고요, 약속을 가는 날이 아니면, 대개 주변 카페를 가거나 산책을 갑니다. 병원에 출근한 이후로는 쭉 바빠서 요즘은 이렇게 빠듯하게, 그리고 열심히 지내고 있어요.

Q. 매일 바쁘게 일하고 있는 만큼 하쿠와 보내는 시간이 정말 소중할 것 같아요. 구슬 님이 추구하는 반려 라이프는 무엇인가요?
제가 진료를 맡고 있는 보호자분들 중 항상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최대한 배려를 담아 편하게 해주는 세심한 분들이 계셔요. 제가 추구하는 반려 라이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세심하게 돌보는 ‘케어’ 개념의 반려 라이프를 살고자 해요.

Q. 그렇다면 구슬 님은 하쿠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완벽하지 않은 나와 완벽하지 않은 하쿠가 만나서 이렇게 서로 아껴주면서 지내는 것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천사 같은 하쿠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Q. 하쿠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하쿠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태이든 우리는 항상 하쿠를 사랑하고 함께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전구슬

'제주 동쪽의 시바'를 연재한
에세이스트 전구슬 님은
시바견 하쿠와 반려생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