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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션, 그리고 반려의 아이콘
[CULTURE] 원조 반려 셀럽 오드리 햅번을 추억하다
by Eugene2022.10.05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것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로 헐리우드에 데뷔한 이래로 사랑스러우면서도 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세계인을 매료시켰고, 그가 입은 옷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그리고 담배 파이프마저 시대를 대표하는 지표가 되었다.
오드리 햅번은 1993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다. 오드리 햅번 사진전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늘 성황을 이루고 있고,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영화들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현재로 소환되고 있다.
이유는 아마도 예술이라는 미학의 성전을 벗어나 사회적인 영역에 다다르기 위한 그의 부단한 노력과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반려생활의 형식과 태도를 만들어낸 이가 오드리 햅번이라는 걸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Her Story
오드리 햅번은 벨기에 출신 영국 은행가였던 아버지와 네덜란드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
파시스트였던 부모 탓에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외가였던 네덜란드로 피신해 유년기를 보냈고, 당시 1944년 독일군의 식량공급 차단으로 대기근을 겪으며 심각한 영양실조와 빈혈, 부종 등 합병증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이 시기의 경험은 성장 후 그가 반전(反戰)과 기아퇴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정신적 배경이 되었다.
10대 시절 촉망받는 발레리나였던 오드리 햅번은 170cm의 큰 키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운 좋게 24살 때인 1954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 역에 발탁되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Companimal Leader
스타였던 오드리 햅번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건 가족이나 수 많은 팬이 아니라 요크셔테리어 ‘미스터 페이머스(Mr. Famous)’였다.
그의 동물 사랑은 유별났다. 헐리우드 최초로 거의 모든 촬영장을 페이머스와 동행했고, 촬영 중 쉬는 시간에는 작은 이 털뭉치 친구를 바구니에 태우고 함께 자유롭게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 심지어 영화 ‘퍼니 페이스(Funny Face)’에 카메오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오드리 햅번의 이런 모습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늘 곁에 두고 있는 이미지가 얼마나 시크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오늘날 반려 셀럽들의 파파라치 컷과 인스타그램 피드의 거의 모든 모본이 햅번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동시에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반려생활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전 귀족들의 일상 속 반려동물이 사치품 혹은 액세서리에 가까웠다면, 오드리 햅번과 페이머스가 보여준 관계는 ‘가족’과 ‘친구’의 새로운 정의였다.
페이머스가 LA 윌셔 대로(Wilshire Blvd)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로도 복서, 미니어쳐 푸들, 잭러셀 테리어 등 다양한 친구들이 햅번의 곁을 오랫동안 지켰다.
Beyond Beauty
만년의 오드리 햅번은 은퇴 후 이태리와 스위스에 머물며 유니세프 기아퇴치 봉사 활동 외에는 대외적인 노출 없이 아들 둘을 키우며 검소하고 평범한 일생을 보냈다.
당시의 반려생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자서전을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는 건강을 위해 개들과 산책해요. 그리고 늘 개들과 대화를 한답니다. 이 대화는 내 영혼을 맑게 일깨워주죠. 그리고 침대에서 따뜻한 강아지를 껴안고 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 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