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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는 댕댕이, 본캐는 히어로
[CULTURE] 세계인이 기억하는 털뭉치들을 소개하다
by Chloe2022.08.10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동물 중에서도 사후에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교감을 나눠온 개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구나 하나쯤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만취해 잠든 주인을 위해 밤새 불을 끈 개, 주인을 찾아 수 천리 길을 돌아온 진돗개까지 여럿이다. 그렇게 세계인의 가슴에 하트마크를 새긴 털뭉치들을 모아봤다.
우주의 별이 된 ‘라이카’
65년 전 옛소련은 믹스견 ‘라이카(Laika)’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당시는 미국과 옛소련의 냉전 시기였고, 우주 탐사 경쟁이 치열했다. 미국은 원숭이, 침팬지들을 우주선에 실어 보낸 반면, 옛소련은 개들을 보냈는데 유인원보다 훈련 기간도 짧고 구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부분이 떠돌이 개였고, 라이카는 그 중에서도 가장 훈련성이 좋은 아이였다.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에 성공한 후 옛소련은 대대적인 선전전으로 라이카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라이카가 발사 후 7시간 밖에 살지 못했다는 사실이 2002년에 밝혀져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미국과 옛소련의 동물을 이용한 우주탐사 경쟁은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암스트롱을 태우고 달착륙에 성공하며 막을 내렸다.
눈보라를 뚫고 백신을 나른 ‘발토’
‘발토(Balto)’는 알라스카를 디프테리아의 위협에서 구한 위대한 레이스를 이끈 전설의 썰매개이다.
1925년 1월 알라스카의 최북단 작은 도시 놈(Nome)에 치사율 100%인 디트테리아가 발병해 인근도시 주민까지 1만명이 감염의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항혈청을 영하 50도와 시속 40km로 몰아치는 강풍, 폭설까지 겹쳐 운송이 불가능했다.
방법은 단 하나, 개썰매뿐이었다.
그렇게 릴레이로 항혈청을 나르는 레이스가 시작됐다. 여러 팀들이 이어 달렸고, 4일째 발토의 썰매팀이 레이스를 시작했다. 발토는 가슴까지 쌓인 눈을 헤쳐야 했고, 핸들러가 중간에 시력을 잃어 직접 길을 찾으며 레이스를 이끌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종착지까지 레이스를 마친 발토는 총 85km를 쉬지 않고 달려 무사히 혈청을 운반했다.
세럼 런(Serum Run)이라 불리는 이 레이스는 20개팀, 150마리 썰매개들의 쉼없는 128시간 달리기로 완성됐다.
2년의 기억으로 14년을 기다린 ‘바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살고있던 죤 그레이(Jhon Gray)라는 경찰관이 1858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무는 주로 늦은 시간에 거리를 순찰하며 화재나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었고 항상 바비(Bobby)와 함께였다.
죤은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지만 바비는 무덤위에 올라앉아 떠나기를 거부했다. 공동묘지의 관리인들은 바비를 쫓아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궂은 날씨에도 무덤을 지키는 바비에 탄복해 조그만 집을 무덤 옆에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1867년, 모든 애견에 세금을 물리고 떠돌이 개들은 도살처리 하는 조례가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바비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바비의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은 에딘버러 시장은 바비를 위해 세금을 내주었고,바비는 1872년 무덤가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14년간 죤과 함께 했던 시간의 7배가 넘는 긴 세월을 그를 그리며 보냈다.
주인과 마지막을 함께한 ‘브론디’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 저먼 셰퍼드 ‘브론디(Blondie)’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한 사내의 초점을 잃은 눈빛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2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완전히 연합군에 넘어간 1945년 4월29, 히틀러는 베를린 총통 벙커 서재에서 그를 지켰던 반려견이자 경비견이었던 브론디와 함께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처형된 무솔리니의 시신이 거리에서 훼손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오후, 히틀러는 애지중지하던 브론디에게 청산가리를 먹였다. 브론디는 연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침대를 허락한 유이한 생명체였다.
그리고 이튿날, 히틀러와 에바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는 홀로코스트(Holocaust)와 제노사이드(Genocide)를 일삼았던 미치광이였지만, 세계 최초로 동물학대 금지와 생체 해부 규제 등의 내용을 포함한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애견인이었다.
인명구조가 제일 쉬웠던 ‘베리’
세인트버나드 ‘베리(Barry)’는 19세기 초 생베라나르 고개(Great St Bernard Pass)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인명 구조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폭설로 알프스 산길이 모두 막힌 상황에 홀로 브랜드 위스키를 채운 술통을 매고 조난자 구조에 나선 베리는 한 얼음 동굴에 잠들어 있는 소녀를 발견해 등뒤에 태우고 폭설이 내린 산길을 뚫고 수도원에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알프스의 구조견 세인트버나드는 일약 슈퍼스타가 되었다.
베리는 얼음 동굴의 소녀뿐 아니라 활동기간 동안 무려 40명이 넘는 조난자를 구해낸 최고의 인명구조견이었다.
언성히어로 ‘개벽이’와 ‘개죽이’
2000년대 초, 인터넷 강국을 선언한 대한민국의 온라인 문화에 등장한 언성히어로 ‘개벽이’와 ‘개죽이’.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중심으로 재해석되고, 재생산된 개벽이와 개죽이의 수많은 짤들은 이 두 마리 강아지를 온라인 B급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당시 사건과 이슈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진들에는 빠짐없이 개벽이와 개죽이가 등장할 정도였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개벽이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통해 오래 전 여름, 복날을 넘기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고, 온라인에는 즉시 개벽이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개벽이의 분향소 게시판에는 수 만명의 누리꾼들이 방문해 댓글로 온라인 스타의 죽음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