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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디자이너와 무지크
[BRAND] 전지적 반려관점으로 ‘생로랑’을 째려보다
by Chloe2022.06.28
아마 30대 이상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지금의 ‘생 로랑(Saint Laurent)’은 2013년 디올 옴므의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노회하고 하향세에 있던 이브 생 로랑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면서 과감하게 ‘Yves’를 떼고 젊고 힙하게 리뉴얼한 브랜드이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이 없었다면, 오늘의 생 로랑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세계인들이 그를 가리켜 “패션은 죽어도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칭송할 만큼 패션 산업에서 그의 창의적인 영향력은 대단했다.
동시에 그는 어마어마한 반려인이었다. 정확히는 프렌치 불독에 미친 남자였다.
그의 영혼의 친구였던 무지크(Moujik)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불독으로 남아있다.
패션계의 혁명가
입생로랑은 알제리 이민자의 후손으로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해 늘 혼자였던 그는 패션잡지를 읽고 드로잉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소년은 21살에 크리스찬 디올에서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을 세상에 선보였다. 패션 천재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1961년 당시 배우자였던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와 함께 이브 생 로랑을 설립했다. 이후 이브 생 로랑은 패션계의 이단아로 마음껏 재능을 폭발한다.
여성에게 바지 슈트를 입혔고, 예술 작품을 패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마음껏 변주했다. 지금의 탈코르셋을 1960년대에 시스루 의상으로 앞서 표현했다. 또한 백인 일색이던 런웨이에 흑인과 동양인 모델도 설 수 있도록 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념도 보여줬다.
이브 생 로랑은 그렇게 ‘패션 계의 피카소’라고 불릴 만큼 스스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독한 프렌치불독 사랑
이브 생 로랑의 프렌치 불독 무지크는 프랑스어로 ‘러시아 농민’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이 러시아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던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건장하고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빗댄 듯 하다.
무지크는 이브 생 로랑의 작업실은 물론, 카페를 가거나 클럽에 갈 때도 늘 동행했다. 둘의 깊은(?) 관계는 여전히 수 많은 사진과 필름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브 생 로랑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지크의 존재를 이렇게 소개했다.
“난 초조할 때는 무지크를 봅니다. 무지크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모든 고민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요. 그리고 무지크는 아틀리에에 가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그래서 쉬는 날에도 일어나자마자 아틀리에로 직행하곤 합니다.”
그와 무지크가 한 침대에서 잘 때는 누구도 그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도우미가 방문에서 긴 삽(?)으로 서빙을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이브 생 로랑의 절친인 앤디 워홀은 친구를 위해 무지크의 초상화를 그렸고, 무지크는 워홀의 생전 마지막 초상화 작업으로 영원히 세상에 남았다.
아직도 무지크의 흔적이
이브 생 로랑은 무지크를 기리기 위해 가방 라인 중 베이직한 토트백에 무지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무지크 백은 생 로랑의 시테디셀링 아이템으로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무지크를 위해 반려 소품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그 전통을 이어 생 로랑 역시 반려견을 위한 시그니처 아이템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식기부터 소가죽으로 만든 이동가방과 칼라, 리쉬, 하네스 등 다양하지는 않지만, 생 로랑의 시크하면서도 과감한 컬러와 소재가 돋보이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어쩌면 너무 담백하고 평범해서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용하거나 착용했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 다른, 그런 꾸안꾸 매력을 품고 있는 디자인의 제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