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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앙한다면 톰브라운처럼
[BRAND] 전지적 반려 관점으로 톰브라운을 스캔하다
by Chloe2022.10.11
‘삼선’에 우리는 늘 설렌다.
10대 시절에는 ‘아디다스’, 스물이 넘어서는 ‘톰브라운’의 삼선에.
물론 지난 몇년간 브랜드 이미지가 다소 부정적으로 소모됐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톰브라운 앞에서 심장이 사정없이 나댄다.
하지만 톰브라운에 영감을 불어 넣고, 감성을 눈앞에 펼쳐 놓은 디자이너 톰브라운(Thom Browne)이 짧은 다리에 긴 허리로 뒤뚱뒤뚱 걷는 털뭉치를 추앙하는데 여념이 없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Genius
디자이너 톰브라운은 척박한 미국 패션산업을 뚫고 피어난 한 송이 선홍색 꽃이다.
펜실베니아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88년부터 1997년까지 헐리우드에서 10년간 배우로 활동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걸 깨달은 톰은 뉴욕으로 돌아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계 담당자로 취직했고, 그 곳에서 처음 접한 패션의 세계는 숨겨진 천재성에 불을 붙였다.
창작열에 불타오르던 톰은 ‘클럽 모나코’에서 서른이 넘어 늦깎이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고, 이듬해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랄프 로렌은 보조 디자이너로 발탁했다.
그리고 2001년 드디어 본인의 이름을 건 레이블로 그 유명한 회색 슈트를 세상에 선보였다. 1960년대 아버지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톰의 맞춤 슈트는 큰 인기를 끌었고, 2004년 뉴욕 패션위크에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놀라운 역사의 첫 번째 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Hector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2015년, 톰은 와이어헤어 닥스훈트 한 마리를 입양한다. 까슬까슬하고 작은 털뭉치의 이름은 헥터 브라운(Hector Browne). 오늘날 톰브라운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 녀석이다.
맨하탄 근교에 살고 있는 톰은 매일 헥터를 데리고 뉴욕 가먼트 구역에 있는 스튜디오로 출근해 함께 퇴근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곳에서 헥터는 자기를 닮은 가방에 들어가 일하는 톰을 바라보기도 하고, 널부러진 원단 조각을 물고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헥터와 함께 있는 시간은 톰에게 리프레쉬 이상이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헥터는 기꺼이 톰의 크리에이트브 충전소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헥터는 성소수자인 톰에게 연인인 앤드류 볼튼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톰은 연인과 반려견에 대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홀로 시작한 사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외로웠어요. 사실 지금 누리고 있는 명성과 부는 사실 앤드류와 헥터 덕분이죠. 그 둘이 없었다면 지금의 톰브라운을 만들지 못했을 거에요.”
Respect
헥터가 1살이 되던 2016년, 톰은 역사상 가장 엉뚱하면서도 재치있는 아이템 하나를 컬렉션에 추가했다. 헥터를 추앙하다 못해 하나의 장르로 만들고 싶었던 충동을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그 아이템이 바로 헥터 토트백(Hector Totbag)이었다.
허리가 긴 닥스훈트의 외모를 본 딴 흉물스런 가방이라니. 게다가 커다란 머리와 짧은 네 개의 다리까지 붙어있는.
패션계의 의견은 분분했다. 톰의 감각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온갖 뒷담화를 한 번에 잠재운 건 시장의 반응이었다.
Icon
실험과 도발의 경계에 있던 이 어이없는 가방은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려나갔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잔잔하다는 평을 듣고 있어 ‘이슈 파이팅’이 필요했던 톰브라운에 큰 물결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한 반려인의 치기 어린 일탈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이후 매 시즌 컬렉션을 공개할 때마다 톰브라운은 새로운 컬러와 소재의 헥터 토트백을 선보였고, 이는 어느새 대중이 손꼽아 기다리는 관심사 중 어엿한 하나가 되었다.
물론 톰브라운도 애견 전용 의류와 소품을 일부 판매하고 있지만, 헥터를 본딴 가방만큼의 임펙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